나는 벙어리
나는 벙어리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 강사>
  • 승인 2017.12.2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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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 강사>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게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11:1~9)

성경에는 수많은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성경에 따르면 원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하나였고, 말 역시도 하나였다.

국제화 세계화 속에 묻혀 살면서 `세계를 하나로'라는 구호가 익숙한 시대다. 우리는 여러 언어를 배우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전 세계의 나라가 230여 개, 언어 수가 3~4천여 개, 문자 수가 100여 개인데 우리는 영어라는 중간언어로 세계가 하나로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는 가끔 언어의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다양한 언어를 가진 외국인들에게 다른 언어를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이방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살면서 자주 이방인으로 느낄 때가 많다. 일주일에 4~5일은 외국 학생을 만나기 때문에 자주 벙어리가 된다. 특히 초급 학습자의 경우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섞여 있어 수업할 때는 주로 몸짓언어나 명사, 동사 등 짧은 문장으로 말하고, 가끔은 침묵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국에 택견 연수 온 운동선수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당시 학생들 대부분 영어 학습권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영어로 말해야 하는데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애를 먹었다. 그런데 지난 학기에는 중국 유학생들을 맡게 되었고, 이번 학기에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 대거 등장했다. 학기마다 다른 나라 학생들을 만나게 되다 보니 학생들과의 대화는 번역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방인 속에서 또 다른 이방인이 되는 나는 가끔 벙어리가 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괴리감이 무척 컸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여성이민자들과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5~6명의 베트남 친구들 사이에 끼어 나만 한국인이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대화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니 혹시 내 흉을 보는 것만 같고 자기들끼리만 낄낄 웃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답답함을 떠나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서야 한국으로 시집 온 이주 여성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 왔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지 공감이 됐다.

TV 프로그램 중 `고부00'이라는 방송을 가끔 본다. 거기에서는 한국 시어머니가 외국인 며느리 나라에 가서 일주일 정도 지내면서 언어의 답답함을 직접 겪어보고 그동안 겪었을 며느리를 이해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한다고는 말하지만 본인이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언어란 우리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직업 특성상 여러 언어를 알아들어야 수월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겨우 단어 정도 알아듣는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나에게 언어의 능력이 뛰어나 세계 각 나라 언어를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모든 언어를 알아듣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가족이나 주변의 친구들 간에도 대화가 안 될 때가 있다. 이렇듯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 사람끼리도 대화가 안 되어 소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소통은 언어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언어를 잘한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는 유학생을 보면서 나는 미소 짓는다. 소통은 언어의 차원을 떠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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