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12.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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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임형묵<수필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왜 글을 쓰는가.”

그런 질문에 어느 분은 세상에 시 한 송이 바치려고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고단한 기억을 치유하려고, 또 다른 누구는 말라버려선 안 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문학 따위를 아직도 붙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안도현 시인도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헛것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쫓아가는 동안 나는 시인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런 그들과 달리 나는 뭔가 또 다른 나를 찾으려고 글을 씁니다. 책상에 다가가 컴퓨터 자판을 누를 때마다 나를 채우는 느낌이 듭니다.

하루의 시간이 남과 별다르지 않아도 그 작은 삶의 흔적이나마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일 외에도 내게 할 일이 있다는 것, 할 일이 생겼다는 것, 그런 맛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삶이 고단하고 짜증이 나도, 또 어떤 때에는 슬픔에 눈물 흘리더라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문학의 길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슬픔과 아픔을 녹여내야 하고 즐거움과 감동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 짧은 하루의 시간을 짜내는 일입니다.

일상을 다듬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노력을 보태야 합니다.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고 감동과 즐거움을 선물하는 고뇌에 찬 시간의 역사입니다.

때로는 그런 글쓰기를 왜 선택했느냐 물으면, 안도현 시인의 답처럼 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천부적으로 문학이나 예술 등 우월적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모를까,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받아들인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면서 글쓰기를 하고 창작을 위한 배움터를 들락거리며 학습하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 분들에게도 그런 질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렇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답을 하지 못할 겁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이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어떤 계기가 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픔이나 슬픔,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자신을 문학의 길로 가게 했다고요.

그렇다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권태로운 일상, 메말라가는 정서, 무료함, 헛헛함…, 이런 무미건조함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글을 왜 쓰냐고 누군가에 묻는다면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삶이 곧 문학이 아닐까요? 한 사람의 일생을 엮으면 근사한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니까요.

하루의 시간이 모여 인생이 되듯, 한 편의 글로도 자신은 물론, 다른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니까요. 글로써 서로 위로받고 위로하니까요.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꿈과 희망을 그리게 하며 용기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삶의 틀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문학에 다가가는 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문학의 길은 아주 작은 사소함에서 출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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