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 취급받는 알바생
절도범 취급받는 알바생
  • 안태희 기자
  • 승인 2017.12.20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안태희 취재2팀장(부국장)

최근에 청주에서 기가막힌 일이 발생했다. 최저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을 점주가 비닐봉지 50장을 훔쳤다고 신고한 일이 생긴 것이었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비닐봉지 2장, 40원어치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절도죄로 신고된 아르바이트 직원은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상황에 직면했고, 억울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사정을 살펴보면 이 직원은 2개월 정도밖에 근무하지 않았는데 1년 이상 계약한 직원에게 해당하는 시급이 시간당 6470원이 아닌 수습 시급 5800원이 적용됐다고 한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대형 프랜차이즈 점주 한 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간 갈등으로 비쳐졌지만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갑질의 병폐, 멀고먼 경제민주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 편의점은 문을 닫았다. 사과는 없었지만.

상당수의 편의점주들은 24시간 경영체제에서 본사의 요구에 응대해야 하고, 들쭉날쭉 근무하는 일부 아르바이트 직원들 때문에 속을 썩인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도 편의점을 운영하느라 애쓰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부 식당의 경우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돌연 퇴사로 가게를 닫아야 하는 지경에 처하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지켜보니 뭔가 섬뜩한 것이 느껴진다. 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 지급을 요구한 이후 비닐봉지를 훔쳤다고 신고할 만큼 감시가 보통 이상이라는 점,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할 경우 횡령죄로 고소하도록 하는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는 것 등이 그렇다.

최근 대기업 계열 패밀리레스토랑이 조직적으로 알바비를 횡령했던 것보다 우리에게 주는 충격이 크다.

청주에 있는 내 이웃의 딸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 그것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경우 절도죄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게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당장 겨울방학이 되면 본인의 생계를 위해서, 또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서야 하는 수많은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이런 피해에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계층상승 단절시대에서 자식들이 멸시와 보복에 시달리게 하는 것 아닌지 자괴감을 느끼는 부모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비용으로 취급하는 시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되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할지 겁부터 난다.

오늘 이 사태는 갑질에 노출되어 잇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면서 자신의 몸을 불태운 지가 언제적 일인데, 2017년의 청년에게 이런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니 속상하기 그지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