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을
위로해 주는 노래 '겨울 나그네'
고독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을
위로해 주는 노래 '겨울 나그네'
  • 이현호<청주대성초 교장>
  • 승인 2017.12.20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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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 이현호

눈부시던 가을의 찬란한 잎들이 겨울바람과 함께 차가운 거리를 헤매는 저녁 무렵의 겨울이 되면 외로움이 솟구치는 남자의 귓가에는 바리톤의 굵은 노래가 떠오르곤 합니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 그 추웠던 겨울밤 라디오에서 들었던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암담과 방황 속에 중심잡지 못하던 나에게 많은 안정과 위로를 주었던 노래입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다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과 비슷합니다. 게다가 오늘 이야기할 `겨울 나그네'의 제목인 `Die Winterreise'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겨울여행'입니다. 물론 그 여행은 허무와 비애, 외로움으로 가득한 여행이겠지요?

`겨울 나그네'는 독일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으로, 빌헬름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으로, 총 24개의 곡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827년 그의 나이 30세 때 작곡된 작품입니다. 연가곡이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완결적 구성체를 가진 가곡 모음을 뜻합니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기 4년 전 같은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연작 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집 아가씨'를 작곡했습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집 아가씨'는 청춘의 서정과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이었지만 `겨울 나그네'는 음울하고 어두운 정조가 가득한 비극적인 노래입니다. 슈베르트는 다가올 죽음을 예감한 듯 가난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고, `겨울 나그네'를 완성한 이듬해 가난과 병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훌륭한 예술가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연가곡 전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추운 들판을 헤매는 청년의 마음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죽음에 대한 상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을 어귀에서 라이어(현악기)를 돌리는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연가곡 중에서 제5곡 `보리수'는 본인이 학창시절부터 가장 좋아했고 슈베르트의 가곡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입니다. 한겨울 방랑의 여행길 중간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던 보리수에 다다릅니다. 보리수가 제공하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심리와는 정반대입니다. 심장 모양의 잎사귀들, 나무 그늘아래 꿈꾸는 아름다운 꿈들, 어서 와서 안락하게 쉬라고 손짓하는 보리수, 보리수가 말하는 달콤한 `쉼'은 곧 죽음입니다. 노래의 전주는 여름날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온화하게 속삭이는 셋잇단음표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그의 얼굴에 부는 차가운 바람을 이야기할 때, 음악은 갑자기 단조로 전환됩니다.

`겨울 나그네'를 들을 때는 철저하게 혼자여야 합니다. 만약 콘서트홀에서 이 음악을 듣게 될지라도, 자신의 내면에만 고독하게 집중해야 음악이 귀를 열고 가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괴로움이 진하게 고여 있는 노래는 눈 쌓인 겨울밤에 들어야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줄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로 승화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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