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을 두번씩이나
파사현정을 두번씩이나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12.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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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교수신문은 1992년 4월 25일 태어났다. 노태우 정권 말기, 아직도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런 때였다. 시기적으로 YS(김영삼)가 3당합당과 함께 민자당의 당권을 잡게 된 것이 교수신문의 출범을 도왔다.

교수신문의 창간은 억눌렸던 한국 지식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군부독재하에 할 말을 못했던 지성들이 간행물을 만들어 스스로 여론을 만들려 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의가 컸다. 노태우 정권에는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이 신문의 태동에 관여했던 3개 교수단체 중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끼었다는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수신문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창간 후 10년째인 2001년부터다. 그해 국내 한해 동안의 사회상을 특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했는데 꽤 반향이 좋았다. 독자들로서는 최고 지성 집단인 교수단체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품격있는 사자성어를 통해 메시지를 발표한다는 점에서 흥미있는 뉴스였다.

2001년 교수신문이 처음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격조'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는데 교수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김대중 정권 말기의 난해한 정국을 의미하는 뜻을 담았다.

이듬해인 2002년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뭉치는 모습을 비꼬았다.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의 사자성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좌충우돌하며 개혁을 시도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사자성어는 계속 발표됐다. 한미FTA 협상으로 갈등을 빚었던 시기인 2006년의 밀운불우(密雲不雨: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오지 않음), 새 정부의 독주를 비판한 2008년의 호질기의(護疾忌醫: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음), MB정권 말기 정권의 부패상을 지적한 2012년의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모두 탁함), 세월호 참사와 비선실세 국정개입 등의 실체를 거짓말로 얼버무린 박근혜 정권을 비판한 2014년의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컬음) 등이 선정됐다. 대부분이 당대 시류를 함축적으로 담아 국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재앙이 발생했던 지난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라는 뜻으로 백성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올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꼽혔다.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적폐청산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시대적 열망을 반영했다. 이 성어는 2012년에도 등장했다. 교수신문이 예외적으로 다가오는 새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했는데 MB정부의 과오를 씻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자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교수들의 희망을 등에 업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길을 가다 끝내 침몰했다.

그리고 올해 파사현정이 다시 선택됐다. 5년전에 염원했던 `파사'가 이번엔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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