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유연성
사고의 유연성
  • 박숙희<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7.12.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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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숙희

정유년 12월,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 상권 마지막 장, 쉰 네 번째 이야기는 혜안 국사(惠安 國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무후가 공양을 하려고 궁중으로 혜안 국사와 북종의 신수 스님을 초청했다. 그리고 두 스님에게 궁중의 미녀가 시중을 들게 하여 목욕을 하게 하였는데, 오직 혜안 국사는 태연하여 다른 이상이 없으니 무후가 탄복하면서 말하기를 “물에 들어감에 비로소 긴 사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도다.”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진원의 선녀가 백옥 같은 뺨에/ 장미 손으로 물 뿌려도 차가운 재에 뿌리네 가시 풀 문에 자물쇠가 없으나/ 거창한 금방망이로 두드려도 열리지 아니하네

신수 대사는 북방에서 법을 폈다고 해서 북종이라고 한단다. 무후는 당나라 측천무후를 가리킨다. 대단한 사람인데 괴짜였나 보다.

궁중으로 두 스님을 공양에 초청해 놓고 두 스님의 법력을 시험해 보려고 궁녀들을 시켜서 목욕을 시켰는데, 혜안 국사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신수 대사는 동심을 했으니까 생식기가 달리 작용을 한 것이겠다.

아리따운 궁녀들이 혜안 국사의 몸에 목욕물을 끼얹는 것이 차가운 재에 물을 뿌리는 것이나 같다는 것은 목인석심(木人石心)과 같이 되었다는 것 아니겠는지.

혜안 국사에게 무후가 나이를 물으니 국사가 대답하길 “기억하지 못한다.” 무후가 “어째서 기억을 못합니까?”혜안 국사가 이르기를 “나고 죽는 몸이 그 순환하는 것과 같아서 일어나거나 다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기억을 하리요? 하물며 이 마음은 흐르되 그 중간에 간단이 없나니 거품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망상이라. 처음 식(識)으로부터 요동하는 모양이 다 없어질 때까지 또한 그와 같거니 어찌 연월을 기억하겠습니까?” 이에 무후가 머리를 조아리고 믿어 받았다.

측천무후가 혜안 국사의 나이를 물었는데, 혜안 국사는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이는 혜안 국사가 도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겠다. 나고 죽는 것이 지구가 늘 돌고 도는 것처럼 순환하고 있어서 언제 시작하고 언제 멈출지를 모르니 나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은 1찰나 동안 900번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생기고 또 사라진다고 한다. 마음이 그렇게 유주한다는 것이다.

마음자리는 우리가 알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미세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미세유주(微細流注)라고 한다는 것. 물이 흐르면 거품이 생기듯이 마음이 유주하면 망상의 거품이 생기는 것이란다.

마음이 생겼다가, 잠깐 유지되었다가, 또 머물렀다가, 변해져서 나중에는 없어진다. 그러다가 또다시 생긴다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 같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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