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하룻밤
특별한 하룻밤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12.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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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코끝이 매운 겨울 어느 날,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누구나 옛날을 회상하면서 `그땐 그랬지, 그때는 참 좋았어!'하면서 아름다운 기억 하나를 건져 올려 한 번만이라도 그날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손 닿는 곳마다 손끝이 척척 달라붙는 유독 추운 날 동아리에서 캠핑을 갔다. 문학 작가를 초대하여 토론하는 자리다. 모두가 문학이란 한배를 타고 종착지도 없이 끝없는 항해를 시작했다. 바람을 안고 유람하는 돛처럼 간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 돛대처럼 텐트기둥은 문학 고리를 붙들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디만큼 항해했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표류하는 문학을 싣고 정처 없이 흘러가 심취된 열정은 거친 풍랑을 만나 맞서기도 하면서 항구에 닻을 내렸다.

짧은 겨울해가 기울어지고 주변이 어둑해지자 텐트로 이동했다. 싸늘하게 맨살을 어루만지는 겨울공기는 후끈거리는 텐트 속에서 녹아내린다. 커다란 천막, 톱니가 서로 맞물려 입을 탁 벌리는 지퍼를 열고 드나들면서 위로 한번, 아래로 한번 그리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세상 참 좋아 졌네!'연신 혼잣말씀 하시는 문우님들. 흥분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소싯적에 한두 번 텐트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을 뿐 기억의 고리가 가물가물한 추억이다 보니 문학 강의보다 뒤풀이에 더 정신이 쏠린 건 사실이다.

글램핑, 화려하다(glamorous)와 캠핑(camping)의 뜻하는 신조어 오토캠핑이다. 조금 불편해도 추워야 제 맛이라는 겨울캠핑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문명을 잠시 벗어나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 손을 호호 불면서 밥을 해먹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것처럼 식수대에서 물을 길어다 요리를 했다. 싹둑싹둑, 보글보글 좁은 공간은 이내 잔칫집 분위기다.

별들이 사라지고 낮게 내려앉은 검푸른 빛으로 변한 하늘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은 겨울밤, 어느새 하늘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깨금발 들고 살살 걷는 아이처럼 아니 꼬리를 치켜세우고 살살 엉덩이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고양이처럼 텐트 위로 조심스런 노크소리가 들린다. 지퍼를 내리자 가로등불빛엔 회색 뭉치가 하염없이 떨어진다. 눈, 눈이 내린다. 겨울캠핑의 꽃이라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눈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묘한 마력이 있다. 모두가 흥분되어 텐트 밖으로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음미하며 저마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시골에서 토끼 사냥하던 일, 눈 내리는 날 우물에서 빨래하던 일, 첫눈 내리면 만나자며 새끼손가락 걸던 첫사랑, 첫눈 내리던 날 사랑에 빠져 남편이 되었다는 달달한 이야기는 눈처럼 소복이 쌓였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특별한 것을 즐기고 싶어 한다. 오늘이 그러한 날이다. 그 옛날 밤새도록 사랑방 아랫목에 모여 이불 속에 발을 꼼지락거리며 손뼉치며 노래 부르던 것처럼, 우린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 그때처럼 손뼉치며 흘러간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때론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옛 노래에 심취되어 흥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나이가 많은 회원께서 유머와 율동을 감미한 노래는 어느 뮤지컬보다도 재미있었다. 아니 개그콘서트보다 더 웃음을 자아내어 눈물을 흘리면서 배를 움켜잡고 뒹굴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목이 마른 현대인,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며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또 느끼는 감성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특별한 하룻밤을 지내면서 데면데면했던 어색함은 겨울을 녹여 따사로운 봄날의 온기로 가득했다. 특별한 그 하룻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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