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變身)
변신 (變身)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12.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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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삶의 길을 바꾸는 일인데, 몸에 익은 길을 버리고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고뇌와 번민의 밤을 보내야 한다. 드디어 온갖 상념과 망설임을 물리치고 나면 그동안 자신을 지배해왔던 삶의 방식과 신념이나 신조를 떨쳐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변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도 세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다니던 방송국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34살에 초대 노조위원장이 된 일이다. 언론민주화에 대한 투철한 사명보다는 후배들에게 등 떠밀린 영향이 더 컸는데, 그 일은 내 사고체계(思考體系)의 원형질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잘 다니던 공영방송을 떠나 민영방송으로 직장을 옮긴 일이다. 공영방송의 노조위원장 출신이 새로 출범하는 민영방송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뻔히 예측되는 민영방송의 폐해를 주장하며 민영방송의 출범을 반대했던 내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소신을 버렸다는 후배들의 질타도 견뎌야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결행한 것은 `나는 소신을 꺾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인간의 비극은 오만의 결과라는 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생각을 깊이 공감하는 이유다.

세 번째는 고전을 읽고 토론을 지도하는 파이데이아의 공동지도자가 된 일이다. 퇴직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방황하다가 고전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교감하며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금의 일을 만난 것은 축복이다. 예단할 수는 없겠으나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변신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세 번의 변신 중 두 번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한 번은 실패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두 번의 경우는 선택할 때 개인적인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다. 나 보다는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중심에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선택한 길은 인생의 쓰라림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실패의 길이었다.

이렇게 사설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한 사람의 변신이 지역사회에 던지는 충격 때문이다. 송재봉 충북NGO센터 센터장이 전문임기제인 충청북도 도민소통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민운동가에서 임기제이긴 하나 공무원 신분이 되는 것은 대단한 변신이다. 그런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까지 본인도 수많은 밤을 고뇌로 지새웠을 것이나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일이 송재봉 특보로서는 아마 인생 최대의 변신일 것이다. 25년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운동가로 살면서 큰 족적을 만들어온 그가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아마 그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시민운동가로 대중적인 신뢰마저 쌓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변신은 지역사회에 파장을 던졌고,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그에겐 퇴로가 없어 보인다. 그의 변신을 우려하는 오래 묵은 친구들의 비난을 새기며, 그의 입성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타협하고 싸워야 한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일은 없을 것이나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 내야할 일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임명을 선거용으로 생각한다. 아니라면 지금까지 없던 7개월짜리 자리를 만들어 그를 임명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런 오해의 중심에 서리란 것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그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임명권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도민을 위한 정치에 전념해주길 바란다. 그 길만이 시민운동가 송재봉이 이시종지사의 도민소통특별보좌관 송재봉으로 변신한 정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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