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방랑자들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2.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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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인류를 `방랑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방랑자, 그들은 누구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탐험가라고 한다면, 방랑자는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닐까?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 나타났을 당시를 상상해 보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 바깥은 모두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무슨 목적을 가질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세상에 진입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다. 왜 인간은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일까? 그것은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고, 유전자에 각인된 명령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인간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인류의 이 방랑벽은 저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졌고, 아메리카와 호주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수많은 섬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제 지구 구석구석을 점령한 호모사피엔스의 방랑벽은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달로, 화성으로, 그리고 저 먼 우주로 가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의 이러한 노력을 탐구심이라고 하지만 탐구심의 더 깊은 저변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원초적 방랑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 옛날, 사람들이 지구를 탐험했던 것은 지금 우리가 우주를 탐험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정말 그럴까? 지금 우리가 달에 가는 것과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베링 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모험일 것 같은가? 달에 가다가 우주선 내부 폭발로 도중에서 되돌아온 아폴로 13호 사건도 있었고, 발사 중 공중 폭발하여 우주인 전원이 죽는 챌린저 우주왕복선 참사도 있었다.

분명 달에 가는 것도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베링 해를 건넌 사람과 건너다 죽은 사람의 비율과 달에 간 사람과 가다가 죽은 사람의 비율은 어떨 것 같은가? 아직 달에 간 사람이 몇 되지 않기 때문에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앞으로 달까지의 여행이 그렇게 위험한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조상이었던 방랑자들은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무지의 소치였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원초적 동기까지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탐험가는 떠나기 전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안전을 점검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완비해서 출발한다. 하지만 방랑자는 준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내면의 명령이 있기에 떠나는 것이다. 탐험가는 자기가 계획한 정보만 얻으면 된다. 물론 부수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겠지만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목적에서 벗어난 정보는 무시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방랑자는 아무 목적이 없기 때문에 정보를 자기의 목적에 따라 선별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탐험가보다는 방랑자가 더 순수하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이제 이 방랑자들은 지구를 방랑할 수는 없게 되었다. 지구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알아서 방랑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가 방랑할 곳은 저 우주가 아닐까? 우주라고 해도 태양계는 이미 방랑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밤하늘의 저 별을 넘어 캄캄한 우주 저 너머가 인류가 방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어느 유명한 산악인이. 산에 왜 가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엽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천문학자들에게 왜 별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별이 거기에 있기 때문엽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과학자들이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이 모두 탐구활동인 것은 아니다.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충동 때문이기도 하다. 별을 보는 것, 그것은 탐구가 아니라 방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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