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날 오랜 것
오랜 날 오랜 것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7.12.12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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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20㎏이 좀 넘는 짐가방의 무게가 고스란히 바퀴로 전달된다. 힘겨운 이동을 이어간다. 바닥은 온통 돌이다. 울퉁불퉁한 돌길은 긴 시간의 피곤함을 발바닥을 통해 전해주고, 온통 책으로 가득한 짐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걷기도, 짐을 이동시키기도 어려운 늦고도 어두운 밤길의 돌 바닥. 극도로 지친 나는 그대로 녹다운이다.

전날의 피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침의 공기는 상쾌했고, 눈앞에서 발광하는 태양은 바닥의 돌 사이로 길게 늘어져 들어오는 환상의 쇼 그 자체였다.

어젯밤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돌이 길고도 멋스럽게 깔려있다. 그 돌길은 언제 깔렸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담고 있어 윗부분은 마모되어 고풍스러운 멋을 더욱 자아냈다. 사괘석정도보다 조금 작은 돌들이 빼곡히 박혀 있는 돌길.

이 돌길을 온종일 내리는 비와 함께 걸었다.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아 미팅하고 이어지는 내내 걷는 돌길이 온전히 내 앞에 있어 나와 함께 했다. 바닥으로 전해오는 느낌은 어제의 돌길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을 걷던 그 길에 내 발자국의 시간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한 돌은 길의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작업실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새로 지은 건물도 예전의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손길과 호흡의 숨을 그대로 담아낸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건물이 잘 보존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공사를 해도 부분적으로 들어내고 새로운 돌을 끼워 넣는다. 아침에 작업하는 사람이 저녁 귀가할 무렵까지도 역시 같은 부분을 수선해 나가는 상황이다. 온종일 망치로 돌을 끼워넣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요즘도 툭하면 뜯어내는 보도블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돌 사이에 시간이 켜켜이 쌓인 창문틀과 약간은 물결과도 같은 아른거리는 유리 또한 최근의 것이 아니었다. 창틀을 화폭 삼아 눈에 들어오는 나무조차 그곳의 시작과 현재의 사람들과 자연의 변화와 진행을 늘 지켜보는 그런 것들이었다.

길고도 긴 시간을 담아내는 것들에서 옛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이 놓여 있다. 그것도 우리가 들으면 익히 알 수 있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작품이 그곳에 놓여 있다. 그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그곳에 있다. 그러면서도 그곳에는 그곳의 시간을 보여줄 수 있는 조그마한 벽돌에서부터 문 손잡이까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함께 보여주고 있다.

쓸모없다 무조건 버리고, 경제성을 이유로 오랜 시간을 지켜온 나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없애 버리는 우리의 현상과 비견되는 상황이다.

얼마 전 덴마크 문화청의 초청으로 세계적 권위의 작가와 국립 디자인미술관, 국립박물관 등 관계기관의 관계자를 만나 문화적 교류를 협의하면서 만난 작가 중, 뱅앤올룹슨 디자이너를 떠올린다. 작가의 부모님은 도자작가였다. 당연히 그 자식 또한 공예작가이다. 직접 재료를 다룰 수 있기에 재료에 대한 물성을 이해하기에 세계적 작품이 나온다. 그렇게 나온 작품은 자그마한 식당에서도 가정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온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공예와 디자인의 강국이 되었다. 공예의 산업화가 디자인이고, 디자인의 모체는 공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장소에서의 오랜 것들, 그들은 세계적 수준의 공예비엔날레를 하는 청주를 서울쯤으로 알고 있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문화적 수준에 놀란 적이 있다 한다. 곳곳에 북유럽의 유명한 가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놀랐다 한다. 모두가 중국제 짝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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