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양심도 저버린 빗나간 자식 사랑
학자의 양심도 저버린 빗나간 자식 사랑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12.12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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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남의 잘난 자식 열 명보다 못난 내 자식 한 명 출세시키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식이 아무리 중하고 귀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최근 유명 대학 교수들이 빗나간 자식사랑에 자신의 연구논문에 고등학생인 자녀의 이름을 공저자로 끼워넣어 명문대에 입학시킨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돈 없고 배경없는 부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배울 만큼 배운 교수들이 학자의 양심까지 저버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부모라는 이름을 앞세워 자행한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트랜지스터의 누설 전류' ,`광학적으로 본 특정 분자의 구조', `혈관 관련 특정 유전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특정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기능과 특성'등등. 나열한 낯선 제목은 바로 교수인 부모를 둔 고등학생들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연구논문들이다.

서울대 공과대학 A교수는 10년간 자신이 발표한 논문 수십 편에 아들을 공저자로 등록했다가 논란이 일자 지난달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A교수는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던 2008년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학술논문에 아들 B씨를 공저자로 이름을 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입학했고, 2015년에는 같은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지난 6월에는 뛰어난 연구 실적으로 A교수의 추천을 받아 학과 내부에서 상과 상금을 받기도 했다.

교육계에서는 전국의 주요 대학 일부 교수들이 고교생 자녀를 자신의 논문에 공저자로 끼워넣어 만든 스펙으로 입시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자녀 상당수는 외국과 국내 명문 대학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나자 교육부가 급기야 칼을 뺐다.

교육부는 최근 전국 4년제 대학에 공문을 보내 논문 자녀 끼워 넣기 실태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사 대상은 전국 4년제 대학(대학원 포함)에 지난 2007년부터 올해까지 약 10년간 국제 학술지,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전임교수 논문 중 중·고등학생 자녀가 공저자로 포함된 사례다. 연구에 기여하지 않았는데도 입시를 위해 미성년 자녀를 끼워 넣은 경우 연구부정에 해당해 징계 등 제재를 가하고, 이런 방법을 통해 부당하게 대학에 입학했다면 입학 취소 등의 조처도 취하겠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다.

교수들이 자식을 위해 자신의 논문에 이름을 공저자로 넣고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다는 뉴스 보도를 접한 날 지인은 근처 포장마차를 찾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남의 자식은 방학 때면 해외로 어학연수 떠나는 데 자기 자식은 못난 부모 만난 죄로 발이 부르트도록 아르바이트하며 최저시급을 받아 등록금을 해결하는 모습이 떠올라 쓰디쓴 술을 연거푸 마셨다고 한다.

수능 성적이 발표된 12일 찾아간 고 3 교실에서는 탄식이 들려왔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구논문에 이름 석 자 올려 줄 잘난(?) 교수 부모가 있다면 수많은 학생이 수능 성적표를 보고 저렇게 울상을 짓지 않았을텐데라고.

내년 3월이면 캠퍼스를 누빌 예비 대학생들이 비뚤어진 자식사랑에 옳고 그름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교수들을 만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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