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과 을(乙)의 관계
갑(甲)과 을(乙)의 관계
  • 박명식 기자
  • 승인 2017.12.12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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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박명식 부장(음성주재)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신분과 계급체계가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눈 신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이 국한됐다. 엄격히 따지면 군림하는 자와 군림 받는 자가 확연히 구분됐다.

민주화 시대라 일컫는 요즘시대는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도 신분과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지만 소속된 집단에서 주어진 신분과 계급을 통한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평등을 주장할 수는 없다.

회사 사장과 말단사원과의 관계, 군대의 대장과 졸병과의 관계를 평등한 신분 또는 동등한 계급으로 볼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요즘 사회의 신분·계급체계는 갑(甲)과 을(乙)의 관계로 인식된다.

갑과 을의 관계는 순서를 가릴 때 사용하면 수평적 관계에 가깝지만 현실적으로는 확고한 권력의 우열로서 부리는 자와 부림 당하는 자로 사용된다.

그래서 한번 갑을관계로 묶이면 아무리 공정하지 않더라도 아예 관계를 깨지 않는 한 불평등은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갑을 관계가 옛날 같지 않다.

최근 음성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환경업체 노조원들의 노동쟁의가 좋은 실례다. 면밀히 따지면 갑과 을간 유리한 노동조건을 타진하기 위한 다툼이다.

노조원들은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에 무조건 65세 정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61세 정년을 기준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건강한 직원에 한해 1년 씩 연장계약을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을에 위치에 있는 노조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일방적으로 해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갑은 협상을 통해 회사 경영을 안정시켜야 한다.

노조는 법이 허락한 노동쟁의라 할지라도 자신들에게 소중한 직업을 제공한 갑의 역할은 잊은 것 같다.

회사가 살아 있어야 노조원 본인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듯 싶다.

노조원 본인들도 가정에 돌아가면 갑의 위치가 된다. 갑으로써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몸담을 수 있는 직장이 있어야 하지 않나!

더 분명한 것은 노조원들에게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갑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갑은 지역주민들이다. 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노동쟁의는 명분도 없고 설득력도 잃는다.

노조원들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지역의 쓰레기 수거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채 쟁의에만 집착해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실수를 범했다.

법이 바라는 노동쟁의의 본질은 갑과 을간에 이해와 양보를 통한 진정한 협상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를 통해 이뤄진 협상속에서 회사와 노조는 비로소 수평적 갑(甲)과 을(乙)의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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