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물리학
내 안의 물리학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12.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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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 이재정<수필가>

가을의 발걸음이 급하다. 겨울의 시린 이를 드러내며 바짝 쫓아와 있는 빈들이 창밖으로 황량하다. 그 위로 잔볕이 소소히 내린다. 수고한 대지에게 주는 온화한 위로다.

어느 휴일의 오후 날씨는 혼자인 나를 아파트에 가만히 붙들어두지 않는다. 음성천에 나갔다. 햇빛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어 걷기에 좋은 날이다. 꽃은 송이를 떨어뜨릴 새도 없이 대궁위에서 말리고 단풍은 땅 위에 두툼한 이불을 덮는다. 갈아엎어져 있는 코스모스가 가을이 멀리 달아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운동이 아닌 산보를 할 요량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꽃에 눈길을 주느라 주위를 살펴볼 겨를도 없었던 천을 둘러보며 느리게 걷는다. 물속에 떼를 지어 다니는 피라미 무리가 보인다. 물오리 가족도 보인다. 물살이 가뿐 쪽으로 헤엄을 쳐간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들은 버겁다. 밀려가기도 하면서 힘껏 제자리로 돌아와 따라가느라 안간힘을 쓴다. 어미는 일부러 새끼를 센 물살로 유인했는지도 모른다. 나름의 교육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보는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는 없던 내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져 앞장을 서서 걷고 있다. 왠지 선명하게 비친 검은 내 모습이 섬뜩하다. 본체의 나에게서 또 다른 내가 빠져 나온듯한 착각이 든다. 내 안에는 둘이 공존하고 있는 게 맞다. 긍정의 예와 부정의 아니오가 늘 다투고 있으니까 말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대립이기도 하다.

아니오는 힘이 세어 넓은 평수로 나를 지배하려 한다. 마음을 다잡아 세운 다짐도 때때로 흔들어댄다. 처음에는 살짝 건드려보다가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강도를 높인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안 되는 예는 언제나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퇴근 후에 음성천을 한 시간씩 도는 운동을 지금은 쉬고 있다. 춥고 어두워서 멈춘 상태다. 초봄부터 시작하여 늦가을까지 했었다. 두 바퀴를 도는 동안에도 내 속에서는 수없이 씨름을 한다. 꾀가 난 그만둘까가 슬며시 나를 건드려본다. 계속해야지는 무슨 소리냐며 끝까지 해야 한다고 나무란다. 기세가 눌린 듯싶던 NO는 포기하지 않고 수없이 핑계를 만들어낸다. 덥지, 힘들지, 다리 아프지, 바쁘지 하며 귀에 쏙 들어오는 구실만 늘어놓는다.

어쩌다가 YES는 끈질긴 유혹에 넘어갈 때가 많다. 한꺼번에 깨물어 먹는 사탕 맛이다. 다 녹고 나면 물을 들이켜야 하는 갈증처럼 꼬임에 넘어간 작용에는 후회가 따라온다. 또한 감미로운 반작용을 끝까지 뿌리친 후에는 희열이 찾아와 나를 깊이로 성장시킨다.

젊은 날, 나에게 한뉘가 쿵 소리를 내며 달려 들어와 박혔다. 조그만 점은 점점 가속도가 붙어 순식간에 나만하게 부피를 불렸다. 그리고는 나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는 한뉘와 작용과 반작용을 두고 맞설 때가 많다. 서로 치받으며 상대에게 익숙해져 가는 동안, 시간은 청년을 희끗희끗한 중년으로 바꾸어놓았다.

내 삶 속에는 이렇듯 뉴턴이 살고 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물리학인 셈이다. 대학원에서 전공과목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물리에 대한 답을 들어보았다. 물체의 본성과 그 운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나를 잘 알고 다스리려면 물리학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나의 본성을 깨달아 이해하면 융통성 없고 현명하지 못한 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다.

물리에 문외한인 내가 배울 수 있는 속성과정은 없느냐고 아들에게 졸라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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