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돼 가는 길
공무원이 돼 가는 길
  • 안정애<청주시 서원구 세무과 주무관>
  • 승인 2017.12.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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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안정애

지난 여름 청주시에 22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큰 피해가 있었다. 하천들이 범람하고 도심과 읍·면 지역이 물에 잠겼고 많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모든 언론이 청주시의 물난리에 대해 며칠을 보도했고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머물렀다. 결국 청주시는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돼 여름 내내 복구 작업에 전 직원이 총동원됐다.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 보면 주말이었지만 새벽부터 거센 비바람 소리에 잠을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오전 8시쯤에는 `아, 이렇게 비가 계속 오니 어딘가 수해가 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공무원 12년차가 된 지금 왠지 `비상소집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예감이 들면서 나갈 준비도 하고 집안도 정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드디어 비상소집 문자가 왔다. 나는 맞벌이 부부공무원이다 보니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시어머님을 부랴부랴 모셔 오고서야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비상소집이 당연히 나가야 하는 내 일로 여겨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5년 신규 공무원으로 발령받았던 나의 첫 비상근무가 기억이 난다. 그해 겨울 밤새 내린 폭설로 인해 새벽에 동사무소로 집합하라는 비상이 걸렸다. 그때는 해당 동사무소로 비상소집을 했다.

그날은 당황했던 걸로 기억한다. 눈이 많이 와서 걷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이 새벽에 출근이라니, 이제 막 시보를 뗀 나는 공무원이 이런 일을 하는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출근을 하긴 했다. 그 후에도 눈이 오거나, 산불이 나거나 또는 북한이 도발하거나 하면 늘 비상이 걸려서 새벽에 출근하거나 퇴근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다수의 공무원 준비생들은 주 5일 근무와 오후 6시 칼퇴근, 그리고 노후 연금 등 언론에서 보도되는 긍정적인 복지만을 생각하고 공무원을 꿈꾼다.

나도 세무직으로 합격해 세무과에 발령을 받았기에 당연히 세금의 부과와 징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환경정화를 위한 청소 및 벚꽃 피는 시기에 하는 노점상 단속, 눈이 오면 하는 새벽 눈 치우기, 각종 행사 참석 및 정말 셀 수 없는 교육 등 내 업무가 아니어도, 내 부서 업무가 아니어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대부분 업무가 시민 대상이라 칭찬보다는 욕먹는 일이 많고 잘해야 본전인 그런 업무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는 신규 공무원들도 있다.

나도 처음엔 내 업무 외의 일은 정말이지 귀찮았다. 특히 근무 시간 이외에 하는 업무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하다 보니 피곤함이 심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날씨가 되면 마음속으로 미리 준비를 하게 된다. 또 길을 가다가 무언가 불편함이 있는 시설을 보면 `담당자에게 알리고 개선을 해야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임용은 됐지만 이름만 공무원이 아닌 진짜 공무원이 돼 가는 길, 처음엔 없었던 사명감이라는 게 생기고 있다.

공무원 준비생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시험만 합격한다고 공무원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당장 취업이 어려워서 준비하는 그들에게 응원도 하고 싶지만, 직업으로 공무원을 택한다면 어떤 일에 종사하게 되는지 본인의 적성과 맞는지를 알아보고 도전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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