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귀하
○○○님 귀하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12.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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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걸레를 집어들었다. 청소기만 휘리릭 돌려놓고 이것 또한 청소려니 하고 며칠 게으름을 피웠다. 이번에도 청소기로 끝내려는데 찌들찌들 묻어 있는 땟자국이 눈에 거슬린다.

거실과 방을 에돌아 먼지를 흡입하고 나오지만, 구석진 곳의 부정 축재와 인이 박힌 땟자국을 미처 캐내지 못하는 것이 기계가 가진 모순이다.

박문수의 마패처럼 구석구석 걸레를 내밀었더니 부정한 것들이 드러나 주위를 환기한다. 집 안이 씻은 듯 부신 듯 청정지역이 되었다. 기분이 상쾌하다.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했을 때, 탐관오리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민초들이 맛보았던 통쾌, 명쾌, 상쾌와 상통하지 않을까.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 널며 가끔은 걸레님이라 대접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참에 부정 축재한 내 속까지 대청소를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사람의 때는 질기기가 쇠심줄 같아서 몇 번의 걸레질로는 어림이 없을 것이다. 불쑥불쑥 내 흠이 드러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청소를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처음 의도와는 달리 범위가 넓어져 대청소가 되어버린다. 손이 드나들다 엉켜버린 서랍과 장롱 속, 기계가 닿지 않는 구석의 몇 날 묵은 먼지, 가구 뒤에 숨은 부정한 것을 단죄하기 위해 가구까지 들어내면 이사 온 첫날처럼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온몸이 땀에 젖도록 말끔히 청소를 끝낸 뒤에 상쾌한 기분으로 소박하나 정겨운 밥상을 차려놓고 가족을 기다린다. 비로소 활개를 치며 만세를 부른 민초들처럼 저녁에 들어서는 가족의 얼굴이 신선해진다.

한 며칠은 상태보존을 하고 싶어서 식구들을 닦달한다. 그러다 언제 그랬나 싶게 함께 어지르고 마는 것이 우리 집의 일상이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마지못해 걸레를 집어든다.

다시금 걸레는 온갖 때를 흡수하여 황달을 면치 못한다. 방망이 세례를 받고 서로 살을 문지르며 저를 씻어내는 일도 한계가 있어 끝내는 살신성인으로 제 소임을 마친다.

살신성인이라니, 소식 들어 본 지 오래다. 만주벌판을 누비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는 숭고하고, 그 핏자국이 독립기념관 태극기에 아직 선명하던데 저를 살리고자 남을 죽이려는 원님들의 추태가 괴이쩍다.

그래, 어찌 365일을 하루같이 투사들처럼 살아내랴. 어림잡아 인생 백수래도 그 많은 날을 어찌 좋은 일만 하고 살아가랴. 다만 때를 보아 집 안도 내 안도 때가 끼고 먼지가 자욱하게 앉는다 싶으면 다시 주위를 환기해가며 사는 것이 사람의 일이리라. 이 당, 저 당, 이름 잘 훌륭하다. 때때로 흔들릴지언정 이름값으로 살신성인하여 애국하길 바라는 것이 민초들의 마음이다.

민초들의 대리자, 촛불 앞세워 구석구석 어두운 곳 들추어 햇빛 들게 하고 눈물 닦는 그 기상이 가상키도 하다.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는데 한쪽 귀가 따갑다. 오만사람의 마음이 다 같을 수 없어서 구설에 오르는 날도 많은데 그 구설 쉬이 보지 말아야 하리.

내가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고 대대적으로 청소를 해도 알 수 없는 한구석에는 먼지가 습을 만나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탐관오리의 가당찮은 행위와 갑의 폭력에 멍들어가는 민초들 아직은 많으리니, 촛불이 바람에 상쇄되지 않도록 부디 초심을 잃지 말라 중간보고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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