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가 능사인가?
폐지가 능사인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12.05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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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일이 터지면 없애면 그만이다.

원인도, 과정도, 대안도 필요 없다.

오로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쉽게 그리고 빠르게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제도를 폐지하면 된다.

제주도 특성화고 졸업반 이민호 군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16일엔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박 모군이 회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중태에 빠졌다. 올 초엔 전주의 특성화고 학생이 통신사 콜센터 근무 중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매년 여러 건 씩 터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관련 사고에 교육부가 내놓은 처방전은 다름 아닌 현장실습 폐지였다. 전 정부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 그해 수학여행을 금지했다.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님에도 교육 당국은 참으로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던 학생도 많았는데 3년 전 교육부는 그해 수학여행을 금지시켰다. 이번엔 특성화고 학생들이 얼마나 취업을 원하는지 교육부는 역시 관심 없다.

학교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데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하는 대안을 내놓기를 기대하는 게 무리수인지도 모른다.

현장 실습을 폐지한 것으로 특성화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부의 착각이다.

특성화고 학생이나 교사 모두 교육부 현장실습 폐지 방침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 데 교육부는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파악이나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특성화고 학생 중 대다수는 졸업 후 취업의 꿈을 안고 입학한다.

기술자로 사회에 이름을 날리고 싶은 학생도 있고, 돈을 벌어 가족과 동생을 건사해야 하는 청소년 가장은 졸업 후 취업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폐지는 날벼락과 같다. 현장학습 폐지 여파로 특성화고 취업률이 감소하면 학생들은 갈 곳이 없다.

오죽하면 특성화고 학생들로 구성된 `특성화 고등학생 권리 연합회'가 교육부를 향해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할까.

학생들은 안전에 대한 대책과 철저한 관리감독 속에 양질의 현장실습 업체에서 실습하도록 제안했건만 교육부는 폐지라는 극약처방을 들고 나왔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수학여행을 가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안전 불감증에 초점을 맞춰 대안을 수립하기는커녕 정부는 해경을 없애고 그해 수학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소규모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도 사고는 늘 도사린다.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유명무실하다는 얘기다.

특성화고에 수십 년 근무한 모 교사는 취업 업무를 맡았을 때 교육부에 수없이 제안하고 요구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 실습을 안전하게 제대로 운영하려면 현장실습생이 파견된 우수업체에 세제혜택이나 실습생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는데 교육부가 내놓은 정책이 탁상공론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 있다.

말로는 세계적인 마이스터를 키워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특성화고 육성 정책엔 손도 못 대고 있는 게 현재 우리 모습이다.

현장실습생이라서 사고가 난 게 아니다. 근로자라도 안전한 일터가 아니라면 사고는 늘 기다린다.

학교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교육부의 손에 한국 교육의 미래를 맡겨도 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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