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마음
부모 마음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12.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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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보아야 갈 수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면 밤늦게 집으로 오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밤길이 무서울까 봐 어머니는 마을 어귀에서 어두침침한 초롱을 들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철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사시던 어머니는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도 한결같으셨습니다. 지금도 눈 내리는 날이면 아릿한 기억으로 눈앞에 선합니다.

조금 색다른 음식을 할 때면 어머니는 가족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려 밥을 차리셨습니다. 누가 늦겠다는 연락이 오면 그 사람 몫을 챙겨 놓고 식사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의 사는 모습도 어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혹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우리 자녀는 공부 머리가 늦게 틔어서 그럴 것이라 믿고 기다려 주시고, 자녀가 건강이 여의치 않아도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다려 주십니다. 자녀의 성격이 다른 사람에 비해 거칠어도 좋아질 것이라 믿으며 기다려 주시고, 어느 자녀가 어렵게 살아도 언젠가는 잘 살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려 주는 부모님들 덕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겠습니까? 불면 날아갈까, 넘어지면 다칠까, 어쩌다 바빠 끼니를 거르면 배고프지 않을까 자식 걱정에 마음 편할 새가 없는 것이 부모들의 삶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녀가 원하는 뒷바라지를 충분히 해줄 수 없는 경우에 처하면 부모는 평생 자녀에게 죄인이 되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이야 뼛골이 부서지든 말든 자식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싶고 자녀들이 살다가 어려움을 겪는다 싶으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해결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장성하고 보면 부모가 가진 것을 주고 싶어도 그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부모에게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지금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녀들이 받아 갈 수 없거나 자녀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뿐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장성한 후 어느 날 아버지가 위급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계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담당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를 부른다기에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아버지가 오래 사실 것 같지 않으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사시던 고향 집에 가서 그간 아버지가 수용하시던 물건 정리도 하고 지인들에게 아버지 상태도 알려 드릴 겸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고향 집을 둘러보고 아버지가 수용하시던 물건들을 살펴보니 유품으로 간직은 할 수 있어도 제가 생활에 사용할 만한 물건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시던 것과 제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달라서 그랬겠지요. 우리 자녀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부모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생활환경과 시대 상황에서 자라고 있으니 부모의 눈높이와 자녀의 눈높이가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훗날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까, 무엇을 더 해 줄까 궁리하는 것보다는 부모로서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화합하며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자녀와 함께 세상의 풍파를 헤쳐가면서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지켜보고 지지해 준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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