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도 못할 보좌관 왜 늘리나
관리도 못할 보좌관 왜 늘리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12.03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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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장.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5분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고교생인 고 이민호군이 제주의 한 공장에서 현장 실습하다 숨진 사건의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의원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자리를 지킨 의원은 열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바로 하루 전 본회의장은 붐볐다. 218명이 모여 상정된 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뚝딱 처리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7명에서 8명으로 늘리기로 한 관련법 개정안이었다. 운영위를 통과 한지 6일 만에 본회의 의결로 마무리했다. 전례 없는 초고속 절차였다.

비서들을 늘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안다. 그래서 법안을 협의한 운영위는 비공개로 진행했고, 이후 절차는 전광석화처럼 몰아붙였다. 운영위에서는 해괴한 발언들도 나왔다. 한 의원은 “여론은 며칠만 지나면 없어진다“며 양심에 찔려 망설이던 동료들을 독려했다. 또 다른 의원은 “새벽 6시부터 일하는 3D업종인 데, 국민을 너무 의식하지 말자”고 거들었다.

유권자를 고도의 건망증 환자로 몰아가며 강행한 이 담합에 바른정당만 반대했다. 정부의 공무원 증원계획에 쌍지팡이를 들고 반대해온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공무원 300명을 일시에 늘리는 안건 처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적폐와 부당한 특권 청산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는 더불어민주당도 얼굴에 철판을 깔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보다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더 거느리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보좌관이 1명도 없다. 세비도 우리나라 의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혼자 의정활동 일정 짜고 자료 조사하고 발표안을 준비해야 한다. 주 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이직률이 30%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 국회의원 이직률도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대부분 검찰과 법원이 결정한 강제 이직이라는 점에서 스웨덴과 다르다. 그런데도 임기 중 의원 1인당 의안 발의 건수는 평균 70건에 달한다. 지난 19대 우리 국회의원의 평균 법안 발의 건수는 60건이다. 그나마 본회의를 통과해 현장에 반영된 의안은 42%에 그친다.

20대 국회도 다르지 않다. 현재 국회에 쌓여 처리를 기다리는 법안이 8000건에 육박한다. 국민들이 보좌관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추가로 들어갈 혈세 67억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단기필마로 분투하는 스웨덴 의원보다도 일을 하지 않는 나태와 무능 때문이다.

보좌관을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유는 또 있다.

올해 3월 금지 법안이 발효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격도 안 되는 친인척 데려다 보좌관 시켰던 의원들이 수두룩했었다. 보좌관 월급을 기업에서 받아 가로챈 의원에, 보좌관 월급에서 일부를 후원금으로 되돌려받은 의원도 있었다. 보좌관에게 자신의 애완견 털을 깎게 하는 등 사적인 용무에 동원한 의원도 부지기수였다.

최근에는 국회의원 전·현 보좌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 2명이 구속됐다. 전 전 수석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롯데홈쇼핑이 후원한 3억여원 가운데 1억1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다.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 전 보좌관도 강원랜드 특혜채용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 전 보좌관도 청탁을 받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의원들은 모두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보좌관 관리를 제대로 못 해 죄송하다”고. 이 대목에서 드러난 사실은 두 가지다. 해선 안 될 일까지 하고 다닐 정도로 한가한 직종이 의원 보좌관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의원들 스스로 실토했듯이, 보좌관이 많아 관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작업장 실내온도 43도, 살려줘. 너무 더워”. “12시간을 앉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다. 단 1분도 못 쉬었다.”. 이민호군이 생전에 친구에게 보낸 카톡 문자들이다. 고통 호소라기보다는 애타는 절규요, 오열로 들린다. 고교 실습생의 억울한 죽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실습생이 열차에 끼여 숨졌다. 살인적 격무에 허덕였던 그의 가방에서 점심식사용으로 나온 컵라면은 국민들을 울렸다.

그 참사가 잊혀지기도 전인 올해 1월 전주의 통신사 콜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북한의 아오지 탄광에서나 있을 법한 사고가 주기적으로 터지고 있다.

누구보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재발 방지를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반성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관리도 못 할 보좌관 늘리고 세비 올리기 위한 작당에 골몰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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