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7.11.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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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서울역 앞을 걸었다./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그런 사람들이/엄청난 고생 되어도/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그런 사람들이/이 세상에서 알파이고/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라는 시입니다.

1982년에 이미 김종삼 시인은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더군요. 김종삼의 대답은 자신이 아직 시인이 못 되었기에 잘 모르겠다는 거였지요.

그러면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쉽지 않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순하게 살고, 명랑하고, 맘씨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이 말이죠.

김종삼의 짤막한 시 한 편도 무심코 지나칠 순 없는 노릇이군요.

“물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시의 제목이 `묵화(墨?)'라서 더 좋기도 합니다. 묵화는 농담(濃淡)을 표현할 수 있는데, 김종삼의 경우는 해가 지는 저물녘의 짙은 분위기가 읽혀지게 마련이죠. 어찌 됐든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친 소와 할머니의 땀 냄새가 진하기도 할 테니까요.

`묵화'의 할머니는 다름 아닌 시인이었어요. 김종삼의 입을 빌려 단 하루의 삶도 목숨처럼 붙잡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위로를 전한 겁니다.

“여보게, 애썼구먼/용케 이 하루를 지냈어/발잔등이 그리 부어 어쩌누/고요하고 쓸쓸한 이 밤은 또 어쩔까나.”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따라 했더군요.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후보자 청문회에서 “누가 제게 정의가 뭐냐고 물어도 저는 진정한 법률가가 되지 못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생각에 생각을 더해 제 모자람을 줄이고 이 땅에 정의가 더욱 뿌리내리도록 미력을 다하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했던 겁니다.

얄궂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 될 만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다름 아닌 시인과 같은 사람들일 겁니다. 저물녘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들일 겁니다. 순하게 살고, 명랑하고, 맘씨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기막힌 고생을 겪게 되어도 말입니다.

누군가 제게 물어도 제가 할 대답은 “잘 모른다”입니다.

되고자 하는 사람이 못되었기에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살고 있지 못해서 또한 그렇습니다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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