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 승인 2017.11.29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된서리 맞은 단풍잎 바람에 날리고 찬바람 불기 시작할 즈음이다. 소소한 가을걷이 끝나고 몇 년 전에 심어 놓은 도라지나 캘 요량으로 쇠스랑을 들었다. 마침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약에 쓴다고 한관 정도 필요하다니 땅 얼기 전에 서둘러야 하겠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로 반실만 되누나'

굳이 도라지 타령이 아니라도 대략 서너 자루 캘 것으로 생각하고 빈 자루 몇 개 들고 도라지 밭으로 향했다.

도라지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봄, 가을에 캐어 뿌리를 나물로 먹는데 사포닌 성분이 많아 한방에서는 길경이라고 하여 편도염 등 약으로 사용한다. 여름에 흰색과 보라색으로 꽃이 피는데 제꽃가루받이(자가수분)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수술이 지고 난 뒤에 암술이 핀다. 자가수분으로 인한 유전적 단순함을 피하고 타가수분으로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백도라지, 꽃이 겹으로 되어 있는 것을 겹도라지, 흰색 꽃이 피는 겹도라지를 흰겹도라지라고 한다.

작년에 같은 길이의 이랑에서 서너 자루 캤으니 잠깐이면 한 자루는 캐겠지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서너 발자국 정도 땅을 파내야 한두 뿌리 나올까 말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말라버린 자루가 멀쩡하게 서 있는데도 땅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그럴까? 땅속의 두더지와 그 친구들이 범인일까? 그들에게 죄를 다 뒤집어씌우긴 무리다. 4년이면 캐야 한다는 농부들의 조언을 무시(?)한 내 탓이다. 같이 파종한 옆 이랑은 작년에 4년근으로 많이 수확했는데 이번 이랑은 5년근이 아니던가? 도라지는 왜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썩어버렸을까?

야생에서는 몇십 년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는 것이 도라지이다. 심지어 바위틈에서 백 년 이상 버텨온 도라지는 산삼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 않는가? 흙살이 좋은 곳에 거름을 듬뿍 뿌리고 파종하여 잡초까지 제거해주고 때로는 비료까지 뿌려주었는데 텃밭의 백도라지는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썩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 아이들도 야생의 산도라지가 아닌 텃밭의 백도라지로 키운 것은 아닐까? 매우 좋은 조건이 독이 되었던 것으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야생에서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빼앗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몇 년 동안 애써 가꿔온 도라지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농사를 지어야 본전도 못 찾으니 얼른 땅을 처분하라는 친구의 성화가 떠오른다. 아무리 쇠스랑을 휘둘러도 도라지 담은 자루는 늘지 않는다. 중간쯤 포기하고 갈아엎고 싶지만 가끔 나오는 냉이와 고들빼기 그리고 5년을 버텨준 몇 뿌리의 도라지 덕에 한 이랑 다 일궜다. 그래도 내년에 또 씨앗을 파종해야 하기엡.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