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0년
그 후 20년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11.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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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잘 나가는 줄로만 알았던 나라 경제가 순식간에 파탄이 난 20년 전, 국민들은 “정부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1일 밤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해, 1997년 12월 3일 김영삼 정부와 IMF 간의 협상이 타결됐다.

지금껏 깨지지 않는 83%의 높은 지지율로 시작된 김영삼정권의 말기였고, 헌정 사상 첫 여야정권교체를 실현하며 정권을 넘겨받은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라는 고통으로 임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피눈물 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고, 그 와중에도 `금 모으기'라는 초유의 고통나누기를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평생 햇빛을 보지 못했던 늙은 할머니의 깊은 장롱 속 금반지가 기꺼이 바쳐졌으며, 혹시라도 성장한 자녀들이 어려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아기 돌 반지도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나라에 헌납 됐다.

직장이 사라지면서 졸지에 실업자의 신세로 전락한 가장과 그로 인한 가족들의 신음은 도처에 이어졌고, 견디다 못해 비극적인 삶을 스스로 끊어내는 모진 설움도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20년. 어렵사리 외환위기는 떨쳐 냈으나, 개인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못하고 있고 통계지수 역시 과거의 영화(榮華)를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IMF체제 이전의 한국경제는 성장 지향과 개발독재의 전형이었고, 수출주도형으로 일관돼 왔다. 1997년 당시의 위기 상황에 대한 원인 분석은 대체로 동남아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 금융의 영향과 더불어 재벌 중심의 경제와 방만한 차입경영 및 관치금융, 그리고 부정부패와 대립적 노사관계를 꼽는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IMF와 그 밖의 (금융)선진국으로부터의 차입의 조건으로 제시된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로의 구조조정 및 국가규제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그리고 강도 높은 노동의 유연화와 정리해고의 강행 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후 20년. 우리는 여전히 대체로 나아지지 못한 삶에 허덕이고 있으며 국가부도라는 충격적 위기 역시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제2의 경술국치'라는 호들갑과 굴욕을 순수한 국민의 `금 모으기'를 통해 극복하는 듯했으나, 앞으로도 이러한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는 여력이나 염치가 남아 있을까 의문스럽다.

자본주의는 대체로 초기의 시장화를 통한 태동을 거쳐 산업혁명을 기폭제로 삼는 산업화(공업화)를 거쳐 국가경제 체제의 근간이 되는 케인즈 경제, 그리고 정보화와 금융화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생산과 소비로 이어지는 고전적 경제 체제를 압도하는 금융자본과 여전한 재벌 중심의 경제는 이제 포스트 자본주의의 체제로 숨 가뿐 전환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경제의 패러다임을 소득주도 경제로 천명했다는 점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임금보다 자산을 운용하여 얻을 수 있는 소득이 더 큰 자본주의의 허약성으로 경계하면서 극심한 전 세계적 소득의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다.

김현미 문재인 정부 초대 국토부장관은 취임사에서 아파트가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표적인 소득 불균형과 불로소득의 대명사인 부동산 투기를 엄단하겠다는 의지인 셈인데, IMF체제 그 후 20년, 비정상의 정상화가 움트고 있는 징조인지 지켜볼 일이다.

탐욕적 자본으로부터 건전한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 진정한 촛불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IMF체제 그 후 20년이 헛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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