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우편함
찌그러진 우편함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7.11.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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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어느 흐린 날의 오후 갑자기 우편함이 수영의 눈을 찍었다. 우편함이 찌그러져 있었다. 대문 귀퉁이에 설치해 놓은 우편함, 저절로 이렇게 될 리가 없는데…? 누가 그랬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한 지붕 아래 가게 셋이 나란히 기대어 토닥토닥 생계를 꾸려 간다. 할멈식당, 아재 매장, 아줌마 식품가게다. 할멈은 진실이나 양심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재는 늘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었다. 그중에 아줌마는 가게 안팎을 분주하게 드나드는 사람이었고 바로 가게 옆이 찌그러진 우편함이 매달려 있는 대문이었다.

아줌마는 어렵던 시절 수영의 모친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아줌마 또한 본디 심성이 착하고 정이 많아 사람들에게 베풀고 양보를 해도 사람들은 종종 아줌마에게 손해를 끼쳤다. 하지만 아줌마는 언제나 웃는 낯으로 그들을 대했다. 어쨌든 한 지붕을 가장 아껴주는 사람은 아줌마였다.

수영은 찌그러진 우편함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별로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의문은 꼬리를 물고 되풀이를 하였다. 다만 추측이었다. 누군가 대문을 잘못 열었기에 대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무리를 준 것이 설득으로 다가왔다.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엊그제 식당에 배달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우편함이 자칫하면 찌그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물건들이 새로이 놓여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배달원이 심증이 갔다. 그렇다고 할멈에게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곧바로 아줌마에게 그들을 확인하려고 하자 대뜸 자기가 그 말을 왜 하느냐며 발끈했다. 아줌마는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모든 것을 아는 듯했다.

하지만 누구의 귀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물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시간은 흐지부지 흘러갔고 누구도 찌그러진 우편함에 대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뒤로 종종 우편물이 유실되거나 분실되는 일이 있었다. 어떤 날은 우편물이 비에 젖어 있었고 어떤 날은 옆집 구석에 끼어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줌마에게 전달돼야 할 우편물이 사라져 아줌마 스스로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동안 무관심 속에서 우편함은 찌그러진 채 바람에 덜컹거리다 빈틈 사이로 우편물들이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편함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라 한 지붕 모두의 것이었다. 얼마 후 아줌마가 새 우편함을 사가지고 왔다. 아줌마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왜 책임을 지려는 걸까? 과연 아줌마의 진실은 무엇일까? 양심을 뒤로하면서까지 입을 굳게 다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추측건대 거기에는 미묘한 함수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밝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덮어주는 것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반되게 놓여 있다. 언뜻 보면 누구의 행동은 합당하고 당연적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고 누구의 행동은 부당하고 어긋난 인정에 치우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실은 그 나름대로 이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에 누구의 것이 옳고 그름을 말하기가 애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누구의 행동과 또 그 누구의 침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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