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누군가는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11.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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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누군가는, 누군가 한 사람은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경청하여야 한다. 그가 한 가지를 말하든 둘, 셋을 이야기할지라도 그 사람 속이 풀어질 때까지 들어줘야 한다. 상대방이 말을 다 하고 나서 더 말할 게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본인 속이 타들어 가고 뒤집어지더라도 그 사람 속과 같으랴. 내가 하는 말은 한두 마디에 그치고, 그 사람이 할 말 다하도록 지켜봐야 한다. 듣는 이가 보면 값어치 없어 그만 말하라고 다그치게 마련인데, 그런 마음이 들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떠한 상황에도 하고 싶어 왔는데 말하지 말라고 막으면 말을 말겠는가. 누군가 들어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허공에 대고 소리칠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건물도 낯설고 만나는 사람마저 어색할 것이다. 찾아온 곳이 편치 않은 자리다. 그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자기편에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 여길 것이다. 일 대 백의 싸움이라 외로울 것이다. 그런 불리한 상황임에도 거기다 대고 뭘 잘못 했으니 그랬겠지, 허물이 있으니까 벌 받았겠지 하고 그 사람을 몰아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거다.

그 사람은 지금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만났으면 하고 그곳을 찾아온 거다. 잘잘못을 떠나 내가 그 당시에 왜 그렇게 했는지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을 뿐이다.

마음이 들떠 온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대고 어떤 말을 더하겠는가. 목마르면 차라도 한 잔 마시자면서. 그래도 거절하면, 조금 있다 다시 한 번 커피라도 한 잔 타 주느냐면서 그 사람 속을 달래야 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지라 말 한마디에도 고마워한다.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기편이 되어 준 것 같아 성질이 누그러든다. 문을 열고 들어올 적에는 화를 참지 못해 막말하다가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적은 아니구나, 내 편도 있구나,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위로받을 것이다. 그렇게 노발대발하다가도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표정을 바꿀 것이다.

그런 시간이 되어서야 그와의 협상이 시작된다. 아무리 소리쳐도 다가오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사람의 귀에도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야 그 사람의 입을 막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거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막아도 뭐라 하지 않는, 즉, 그 사람보다 위에 설 수 있는 시간을 번 거다.

말하기보다 들어줄 때 얻는 게 많다고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잘되지 않는 게 우리네 생활이지만, 어쨌거나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그 사람은 힘을 얻을 것이다. 길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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