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만나도 몰라보는 사람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는 사람
  • 신은숙<청주시 내덕2동 행정민원팀장>
  • 승인 2017.11.23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 신은숙

지난봄 모자를 푹 눌러쓰신 어르신 한 분이 “신 팀장을 만나러 왔다”라며 나를 찾으셨다.

언뜻 봐서는 누군지 잘 모르겠어 서 선뜻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직원의 안내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신 어르신은 “신 팀장, 나여”하시며 아주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셨다.

깊은 주름과 검게 그을린 모습 탓에 바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25년 전 진천군에서 청주시로 자리를 이동하기 전에 함께 근무했던 계장님이셨다.

딸이 없으셔서 나를 딸처럼 아껴주셨던 그분은 청주로 전출하는 나와 헤어지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시며 사비로 여비까지 마련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진천군에서 내덕2동으로 근무지를 옮겨 근무하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주민센터에 들러 잘 지내는지 살펴 주셨던 계장님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후로 20여 년이 흘러 지난 봄 어디서 소식을 들으셨는지 내덕2동에 팀장으로 발령 받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이날 후로도 계장님은 가끔 동에 들러 점심을 사주신다고 오셨지만 행사와 겹쳐 번번이 그냥 되돌아가셔야 했고 오늘도 사모님 병원 가시는 길에 들렀다며 안부를 묻고 가셨다.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너무 죄송하고 그동안 계장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참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에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스치고, 현명한 사람은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라는 구절이 있다.

25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도 나를 걱정해 주는 많은 분을 인연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많은 사람을 만났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으나 그 중 내 옆에 남아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를 소중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찾아와 가끔 안부를 물어주신 계장님을 뵙고 더 이상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20여 년 세월 동안 잊고 있던 내덕2동에서의 인연을 떠올려 보니 많은 도움을 주셨던 통장님 몇 분이 생각나 이곳에 다시 오게 됐노라 알렸다.

안부를 전하고 며칠 지나 반갑다며 찾아오신 분도 있었고, 간식을 가지고 오신 분도 있었는데 모두 무척 반가워해 주셨다. 그분들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시고 지금까지 나를 잊고 않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과 함께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쁘다는 핑계와 무관심으로 그동안 잊고 지낸 학창시절 친구들, 같은 부서에 함께 근무하며 정을 나눴던 소중한 동료들, 그 외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인연을 다시 한 번 소중히 생각하며, 오늘은 얼마 전 중학교 졸업 후 그리워만 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봐야겠다.

수필 속 이야기처럼 아사코를 세 번째는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후회가 생기더라도, 30여 년이 흘러 아줌마가 돼 있을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보다는 만나서 실망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끊어진 인연들을 다시금 이어 보기로 다짐하며 이제라도 늦었지만 나를 잊지 않고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해 주신 계장님께 전화 드려 칼국수라도 한 그릇 대접해 드려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