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진 뒤에야 알 수 있다
추워진 뒤에야 알 수 있다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7.11.2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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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에 이어 첫눈이 오고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는 소설(小雪)마저 지났다. 한겨울의 꽁꽁 언 날씨는 아니지만, 아침 및 저녁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짐에 따라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도 절정기를 지나 투두둑 낙엽이 되어 하염없이 쌓이고 있다.

24절기 중에 스물한 번째 절기인 대설(大雪)과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눈앞에 두게 되면 어김없이 R.구르몽의 `낙엽'이란 시가 떠오르곤 한다. 시 전체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시나브로 다음의 구절들을 읊조리게 된다. “시몬, 나뭇잎새 져 버린 숲으로 가자/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부부동반의 연례행사처럼 구르몽의 `낙엽'이란 시와 함께 1년에 한 번씩은 꼭 찾아오는 공자님의 말씀이 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란 구절이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논어(語)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가르침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은 188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바로 이 구절의 뜻을 되새기며 그의 대표작인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고 한다. 안 중근 의사도 1910년 만주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 중에,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란 구절을 정성스럽게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란 구절은 `세한송백(歲寒松柏)'이란 사자성어(四字成語)로도 압축-요약돼서 인구에 널리 회자하고 있다. 단순 추위가 아니라 세상이 어지러워졌을 때도 굳은 절개를 지키는 세한심(歲寒心),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지조(志操)를 잃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세한맹(歲寒盟)이라는 말도 이 구절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추운 겨울에도 쉽게 조락하지 않는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그 어떤 환난(患難)에 처하게 되더라도 지조(志操)를 잃지 않아야 비로소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랏일을 하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우리들 자신 또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와 지조를 온 마음과 온몸으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끝내 태산 같은 부동심(不動心)을 증득해야 한다. 부동심을 기르기 위해선, 언제 어느 곳에서나 온전히 깨어서 조심(操心)하고 조신(操身)하는 가운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 및 논어(語) 태백편(泰佰篇)에 “如臨深淵(여림심연) 如履薄氷(여리박빙)”이란 구절이 있다.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살얼음 위를 걷듯이 매 순간순간을 겸허한 마음으로 온전히 깨어서 한 눈 파는 일 없이 살아가라는 뜻이다. 그 어떤 한파가 세차게 몰아친다고 해도, 이 한 구절을 가슴 속에 깊이 품고 조심하고 조신한다면, 올겨울 내내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푸르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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