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땅
둥근 땅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1.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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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창덕궁의 후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정원에는 연못이 있다. 연못은 대체로 네모 모양이고, 연못 속에는 둥근 섬이 하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섬에는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네모는 땅을 의미하고 원은 하늘을 의미한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네모난 땅을 사람들은 지구(地球)라고 한다. 지구를 영어로는 Earth다. 이 Earth는 흙이라는 말에 가깝다.

또 한 편으로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에 대비되는 말로, 변하고, 영속적이지 못하고,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Earth라는 말에 둥글다는 뜻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Earth를 지구라고 한다. 우리의 천문지식이 사양보다 더 발달해서 땅이 둥글다는 것을 먼저 알아냈기 때문일까? 물론 아니다. 땅이 둥글다는 것은 서양이 먼저 알아냈고, 동양이 이 서양의 지식을 접했을 때 그 놀라움이 어떠했을까? 이 놀라움의 표현이 바로 `지구'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40년경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천구에 관하여(On the Heavens)'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했었다. 그 하나는 월식 현상인데, 월식 때 달에 생기는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극성의 고도가 남쪽으로 갈수록 더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항해를 많이 했던 그리스인들은 배의 돛이 배가 멀어져 갈수록 점점 수평선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로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알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지구가 둥글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를 달에서 보면 지구가 달처럼 보일 것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보름에 `달놀이'를 하지만, 달에 사람이 있다면 달에서는 `땅놀이'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생각도 극히 일부 개화사상을 가진 학자들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최근까지 땅이 둥글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땅이 둥글다는 것을 진작 알았으면서도 그것이 일반대중에게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왜 그토록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일까? 거기에는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천문 관측을 통해서 유추하거나 먼 항해의 경험을 통해서 추리할 수 있을 뿐이다. 측량기술이 발달하면서 정확한 지리적 측정과 기하학적 방법을 통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땅이 둥글다는 것은 일반 상식과 맞지 않는다. 지구가 공 모양이라면 어떻게 공중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으며, 지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점 등이다. 이런 문제는 뉴턴이 중력을 발견함으로써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땅이 둥글다고 주장한 지 거의 이천 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인간 믿음은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체험이 마음에 용해되어 생기는 정신현상이다. 땅이 둥글다는 것은 체험이 아니라 여러 관찰 사실들을 종합하여 논리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땅이 둥글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둥글다는 것이 믿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믿음은 참 묘한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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