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사는 게 힘들어요
스님! 사는 게 힘들어요
  • 법원<청주 능인정사 주지 스님>
  • 승인 2017.11.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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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법원

며칠 전 신도님이 오셔서 “세상이 말세라더니 갈수록 힘들어요. 스님! 어떻게 살아야 하지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부처께서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습니다. 근심과 곤란이 내 앞에 놓이게 됐을 때 우리는 괴로워하고 운명을 탓합니다.

세상을 조금 넓게, 높게 오히려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큰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앞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이 모든 경계는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결국에는 그 모두가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내 안에서 모든 것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결코 내 앞에 다가오는 경계를 둘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한다면 지난 과거에 몸으로 지은 행동 하나하나 입으로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그리고 뜻으로 지은 생각 하나하나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되어 하나도 남김없이 저장되어 있다가 현실이라는 경계 속에서 하나씩 풀려 나오는 것입니다. 근심과 곤란에 부딪혔을 때 “왜 이런 어려운 일이 하필 나에게 일어날까”하며 답답해하는 이도 있지만 나를 이끌어 줄 새로운 수행의 재료가 왔구나 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행자와 중생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에 있습니다. 똑같은 경계를 밝게 돌려 나갈 것인가, 어둡게 만들고 말 것인가? 생각의 차이가 세상을 천상으로 또 지옥으로 만들 것입니다. 근심과 곤란이 있어야 때로는 고개 숙일 줄도 알고 상대방을 높일 줄도 알며, 내가 그랬듯 힘겨운 이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도 생기고, 힘든 때를 거울삼아 더욱 치열하게 정진할 줄도 알게 됩니다.

무릇 경계는 순역이 따로 없어 마음 짓는 대로 같은 경계가 순도 되고 역도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심하며 일체 모든 경계를 다 받아들이고자 마음 연 수행자에게 어찌 근심, 곤란이라는 분별이 따라붙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만 내려놓으면(下心) 일체 모든 경계가 그대로 부처님의 경계가 됩니다.

근심과 곤란이라는 경계 또한 그대로 부처님의 경계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가올 내 앞의 근심 걱정, 괴로움을 그저 힘없이 받아들이며 괴로워하며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경계에서도 당당하며 떳떳하게 그리고 걸림 없이 여여(如如)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 불자의 마음입니다.

본래 우리의 마음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과 같기에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고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내게 다가오는 근심과 곤란은 그 성품 자체가 공(空)하여 다만 인연 따라 잠시 일어나는 물거품과도 같은 것입니다. 경계 자체가 꿈같아 허망할진대 어찌 꿈에 놀아난다면 수행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방하착(放下着). 이는 모든 불교 수행의 핵심입니다. 붙잡고 있으면 얽매이게 됩니다. 근심도 놓아버리고 걱정도 놓아버리고 오직 마음은 평안에 머물면 됩니다. 진정 모든 것을 놓았을 때 이전에 지어 온 모든 업장은 녹게 됩니다. 내 안에 `참 나'의 부처님 마음자리에 모든 것을 놓고 나면 이미 경계는 사라집니다. 문제가 그 자리에서 나왔으니 해답도 그 자리에서 나오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방하착! 즉시 내려놓으십시오. 놓음의 일행으로 스님들은 참선수행을 합니다. 일체를 자성부처님 자리, 본래 나온 자리에 턱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을 턱! 내려놓고 관찰해 보십시오.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는 정견이 서면 앞으로의 길도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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