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알려주는 삶의 正道
역사가 알려주는 삶의 正道
  • 유현주<청주시립도서관 사서>
  • 승인 2017.11.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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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유현주<청주시립도서관 사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이고, 동강과 서강이 가로지르는 산수 화려한 고장 영월. 그곳에 가면 `장릉'이 있다. 문종의 아들로, 12세 때 왕위에 오른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능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담장을 따라 울긋불긋 단풍이 선연하다. 핏빛 눈물 같은 단풍은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어린 군주의 슬픔처럼 뜨겁다.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되어 끝내 죽음을 당한 단종의 주검은 동강에 버려졌고,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거두는 이가 없었는데 영월의 한 관리가 그 시신을 거두어 지금 이 자리에 모셨다고 한다.

투명한 가을 햇살에 속절없이 반짝이는 정자각, 단종비각, 홍살문을 지나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울창한 노송 숲에 이른다. 모든 소나무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능을 향해 일제히 큰절을 올리듯 굽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이 있은지 200년이 훌쩍 지난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왕위가 회복되고, 초라한 무덤도 장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비운의 어린 왕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회자하며 억울함을 위로받는다.

그렇다면 세조는 어떤가! 어린 조카를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이 된 그는 전제 군주로서의 막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호패법과 직전법의 실시로 경제와 국방력을 키우기 위해 힘썼다. 또한 경국대전을 비롯해 다양한 편찬 사업에 착수하여 아버지 세종에 이어 조선전기의 르네상스를 이어갔다. 그래서 후대의 학자들은 세조를 아버지 세종과 견주어 봐도 절대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엄청난 성과를 올린 왕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혈육을 제거한 비정한 왕이라는 오명에 가려져서 조선 최고의 왕이라고 추앙받는 세종과 정조에 비견 가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아는 이도 매우 적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세조는 기억하지 않고, 별다른 업적도 없는 단종은 두고, 두고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그 이유에 대해 `어린 왕이 대신들한테 휘둘려 왕권을 무력화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릴 위험이 있어, 그것을 막아야겠다.'라고 판단하고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후세의 사람들은 `아무리 정당한 목표라도 옳지 않은 방법을 쓴 것에 대해서 단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 삶의 가치란 살아가다가 마주한 인생의 고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락 앞에서 우리가 어떤 결정과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올곧고, 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작은 행동의 힘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은 숙고의 시간이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거의 보낸 지금, 지나간 날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반추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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