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이야기
단추 이야기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7.11.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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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쌕쌕거리며 자는 모습에 이제야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연휴에 친정에 갔다가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새끼를 낳았다는 말에 돼지 막으로 내려갔다. 한 달도 안 된 다섯 마리의 아기 돼지가 올망졸망 어미 돼지 곁에 단추처럼 붙어 있었다. 그런데 단추 하나가 이상했다. 움직임도 없이 구석에 떨어진 채 웅크리고 있었다. 돼지 막의 시멘트 바닥과 울타리 사이에 끼었다고 했다. 오른쪽 앞발과 왼쪽 뒷발을 제대로 딛지 못했다. 절름거리며 어미젖 근처에 가려고 하나 치여서 젖 한번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구석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엄마에게 얘기하자 오늘내일 새로 죽을 거 같다고 했다. 옷에 떨어질 듯 말 듯 달린 단추처럼 세상에서 떨어질 듯 말 듯 간신히 생명줄을 잡고 있는 돼지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헌 수건을 스티로폼 위에 깔고 그 위에 절름거리는 단추를 눕혀 거실 한켠으로 들였다. 밥물을 끓여 단추의 입어 떠 넣었다. 단추는 끽~끽소리만 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몸을 숙이고 앓는 소리를 냈다.

자정이 되었다. 정체가 풀려간다는 뉴스를 들으며 짐을 꾸렸다. 엄마에게 돼지를 부탁했다. 그러나 팔순이 넘은 엄마는 걷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다. 톨게이트까지 가는 동안 머릿속 가득 흔들리는 단추가 맴돌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다. 더군다나 얼마 전 앞집과 그 아래층이 층간 소음으로 실랑이하다 경찰까지 오가고, 결국 앞집이 이사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었다. 그리고 이미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었다. 단추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망설여졌다. 그러나 살리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된다와 안된다'의 깃발을 꺼내 들었다.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가라.'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톨게이트를 이 삼 분 앞두고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며 앓고 있는 돼지를 차에 태웠다. “가지고 가지 말자고,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울 거냐고, 아랫집에서 쫓아 올 거라고.” 말리는 가족에게 목숨만 살려서 다시 시골에 데려다 주면 된다고 말했다.

두 시간을 달려 집으로 왔다. 처음엔 젖꼭지를 빨 줄 모르는 돼지의 입을 벌리고 분유를 똑똑 떨어뜨려 주었다. 그렇게 수십 차례를 반복한 후에 드디어 돼지가 젖병을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휴 동안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타서 단추의 입에 물렸다. 개들도 신기한 듯 단추를 기웃거렸다.

이제는 집에 있던 개보다도 더 자라서 신나게 말썽을 부려 놓는 돼지가 되었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면 야릇한 냄새가 나를 덮친다. 뒤를 이어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난지도를 연상케 한다. 신문은 갈기갈기 찢겨 거실에서 춤을 추고, 매트는 물어뜯어서 파란 살점을 조각조각 흘리고 있고, 욕실 앞에 있어야 할 발판은 부엌에 가 있고, 테이블보는 입으로 물어 재낀 양 떨어져서 거실에 뒹군다. 이젠 다 살렸으니 그만 시골에 데려다 주는 건 어떠냐고 남편은 나를 볼 때마다 타령한다. 나는 20킬로가 넘어서 도저히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데려다 주겠다고 빈말을 한다. 걱정이다. 당연히 단추는 20킬로를 훌쩍 넘길 것이고 나는 또 다른 갈등과 고민에 빠지리라. 그러나 지금은 지금의 일만 생각하리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그날은 단추를 곁에 둘 또 다른 이유가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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