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그대로 그렇게
미완성 그대로 그렇게
  •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7.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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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헌경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너무 아까운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런 책이에요 선생님!”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웃는 얼굴로 늘 반갑게 인사를 하는 혜연이가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구입했다고 한다.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설레는 얼굴로 책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줄 때면 참 고맙고 행복하다.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무엇 하나 선뜻 읽혀지지 않을 때, “내가 읽었는데 정말 좋았어, 너도 읽어봐.” 이 한 마디가 마음을 참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좋았던 느낌을 나에게 나누어주려는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난 뒤 `죽음', `사고'와 관련된 것은 온몸과 마음으로 거부하였다. 모르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눈물과 아픔이 나에게는 곧 죽음이고 사고였다. 그 단어들과 직면하게 되면 칼라니티의 말처럼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칼라니티의 글 `숨결이 바람 될 때'(이종인 옮김, 흐름출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이 아니라 따뜻함과 의지와 희망이었다.

촉망받는 의사인 그에게 암이 찾아왔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어느 날 자신의 죽음과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의사의 입장에서 병을 바라보고 환자의 입장에서 병을 이해하였다. 차근차근.

하루 일과를 잘 마치고 불편한 곳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면 나는? 일 초 이 초 잠시 정적이 흐르다 요동치는 심장 소리에 무너져 내릴 것 같다. 그리고 수 없이 되물을 것 같다. “정말요?”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의사로서 그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혹시라도 병원 생활을 하게 된다면 칼라니티 같은 철학을 가진 의사를 만나고 싶다. 그렇다면 불안해하지 않고 나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을 완성으로 끝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보다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할 것 같다.

감동적이다. 감히 현명하다는 단어로 그를 설명 할 수가 없다.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고 하였던 칼라니티는 과학적으로 병을 바라보고 문학적으로 삶의 시간을 써내려갔다. 힘겨운 레지던트 과정을 우수하게 마무리하였고, 더욱이 투병 중에 글이라니.

칼라니티에게 완성으로 끝날 수 없었던 이 글이 모든 죽음은 미완성이라고 설명해주는 것 같아 큰 위로가 된다. 나에게는 마침표 같았던 시간이 엄마에게는 마침표가 아니라고. 엄마의 삶을 내가 힘들다 하여 함부로 문 닫지 말라고. 미완성이면 미완성 그대로 그렇게 내버려두라고. 숨결이 바람 될 때 그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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