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차
마지막 기차
  • 이영숙<시인>
  • 승인 2017.11.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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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우연히 한국일보 오피니언 <김도언의 길 위의 이야기> 데카당스 문학편이 실린 기사를 읽었다. “우리나라에는 왜 데카당스 문학이라는 것이 없을까. 데카당스 문학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 문학의 현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내용이다.

2010년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으로 `오장환 시의 데카당스 양상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오장환 시인을 연구하고 싶다고 했을 때 지도교수님은 데카당스 문학으로 연구하면 가치가 있을 거라고 권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본의 데카당스 문학 이론을 공부하고 보들레르와 랭보, 말라르메와 러시아 예세닌의 영향 관계를 비교한 후 정립한 오장환 시인의 데카당스 문학성으로 우리 문단에 미력하나마 초석을 놓았다. 다만 오장환이 1930년대 충북 지역 시인이고 논문 발표지가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이라는 전제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1930년대의 한국문단에서 오장환만큼 다양한 평가를 받은 시인도 드물다. 지금까지 오장환은 시단의 천재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퇴폐 성향을 띤 문제의 시인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한 젊은 유학생들을 통해 한국에 유입된 서구문예사조는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유입되어 많은 오해를 낳았다. 그런 시단의 흐름 가운데 댄디 남 오장환에서 시단의 천재 오장환으로 새롭게 만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장환의 시만으로는 오장환 시인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가 조선일보에 발표한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 「제7의 고독」, 「인간을 위한 문학」 등의 산문과 1990년 범우사가 발견한 장시 황무지의 후속고 6연을 통해 오장환 시인의 시 세계는 데카당스 문학이라는 긍정적인 출발이 가능해졌다.

그의 시작노선은 식민지 근대 조선의 기형적이고 부정적인 면모를 주제로 새로운 시대를 제시하려는 진보적인 리얼리스트로서의 창조행위이다. 오장환 시의 데카당스는 로마제국의 몰락현상으로부터 출발한 문화 데카당스와 그러한 부패와 타락, 퇴폐 현상들을 주제로 현상을 진단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카당스 문학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띤다. 잘못된 전통의식을 고발하는 그의 시대 비판의식을 `서자 의식'의 발로라는 지엽적인 평가로 머문다면 그 편견에 갇혀 천재 시인 오장환을 만날 수 없다.

그의 노선은 `나'에서 `세계'로 `여기 이곳'에서 `저기 저곳'으로 확장되는 데카당스 문학인 것이다. 현실부정과 자기파괴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자아를 모색했던 오장환 시인, 이후 기형도의 시로 데카당스 문학 연구 논문이 나오면서 한국 시단에서의 데카당스 문학도 본격적인 연구를 띄게 됐다.

병든 역사를 괴로워하던 오장환 시인, 서자라는 형식에 덮여 사멸된 그의 큰 주제들이 제대로 조명될 날들을 기다리며 그가 회한에 젖던 `마지막 기차'를 되뇌인다.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에 실리어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 놓아 울리라.

-오장환, 「The Last Train」 부분



훗날 후손들이 우리에게서 카인을 읽지 않도록 이 시대를 아프게 한 모든 것들을 마지막 기차의 화물칸에 실려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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