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다이빙
죽음의 다이빙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1.1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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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1997년 10월 15일 여행을 시작한 토성 탐사선 카시니가 20년 여정을 마치고 2017년 9월 15일 일생을 마감했다. 이것을 매스컴들은 죽음의 다이빙(death dive)이라고 불렀다. `카시니'는 17세기 토성의 띠와 위성들을 발견한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카시니(Giovanni Domen ico Cassini)의 이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 토성은 아름다운 고리들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신비하고 가장 사랑받는 행성이다. 토성의 고리들은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발견했지만 그는 그것이 고리가 아니라 토성 주위를 도는 위성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고리라는 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빛이 파동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했던 호이겐스였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토성에는 고리와 더불어 위성들도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은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카시니는 이번 여행에서 이 타이탄에 갈릴레이 탐사선을 낙하시켜서 350장이 넘는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아직 생명의 존재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에 운명을 다한 카시니 우주선은 토성 주위에만 13년을 머물면서 수많은 소식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카시니는 2013년 7월 19일 방향을 지구 쪽으로 돌려서 지구와 달, 수성, 금성, 화성 등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이 날 NASA(미항공우주국) 연구원들은 지구를 향해 돌아서는 카시니를 향해서 인사를 했다고 한다. 물론 카시니가 그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인가? 우주를 보는 일이 단지 과학인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와 같은 동심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카시니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포근하게 해 주는가?

운명을 마친 카시니는 토성에 충돌하면서 타서 없어졌다. 카시니를 토성 주위에 오랫동안 공전하게 둘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죽음의 다이빙을 시킨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카시니에 혹시라도 묻어 있을지 모르는 지구 생명체(균, 바이러스, 또는 지구 생명체의 DNA)나 카시니가 사용하던 핵연료가 타이탄이나 다른 위성을 오염시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의 생명체에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신문에 난 이 기사를 보면서 잠시 혼란스러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를 향하는 카시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외계 생명체를 오염시킬까 염려하여 우주선을 불태워 없애는 이 두 장면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우리 내부에 나도 모르는 이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니! 그리고 이 상상의 생명체가 타이탄에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아주 낮고, 있다고 해도 우리와는 근본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바이러스 수준의 그런 생명체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상상의 외계 생명에 대한 이 지극한 배려,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구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생명경시 현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구인인 우리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키고,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수많은 전쟁과 대학살과 지구 생명체를 전부 파멸시킬 수 있는 양의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지구인들이다. 지구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또 얼마나 잔인한가?

외계 생명에 대한 지극한 배려와 지구 생명에 대한 지독한 잔인함이라는 이 이율배반,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를 탐험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땅이 아닌 하늘, 지구가 아닌 별과 은하를 향하게 하고, 이 시선이 대면하는 우주의 모습에서 지구의 아름다움, 지구 생명의 소중함을 역으로 깨달아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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