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
혼자 여행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11.1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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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스무 살 때부터 혼자서 여행을 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혼자여야 진정한 여행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약간의 처절함이 섞여 있는 철없던 시절의 용기라고나 할까.

혼자서 생각하라, 혼자서 매듭지어라, 혼자서 받아들여라. 왼쪽으로 가든지 오른쪽으로 가든지, 아니면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지 그것은 오로지 너의 몫이나니.

법정이 번역해 문고판으로 나온 조그만 책 숫파니파하타의 경구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 앞은 이랬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비유가 기가 막혔다.

그런 취향은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떠나는 데 주저하지 말고, 머무는 데 편해하지 마라. 안식과 고통은 내 안에 있었다.

사진기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단 거추장스러웠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충실하고 싶었다. 추억이라는 미명 아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만 같아, 사진 찍기가 싫었다. 당시라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아 여행기를 남길 만 했는데도 말이다. 어린 시절 김찬삼의 여행기는 열심히 보았지만, 그때의 나는 사진보다는 감성을, 그림보다는 글을 더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진 찍느라 빼앗기는 부산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조도를 맞추고, 초점을 맞추고, 필름을 갈고. 요즘 같은 디지털카메라라면 부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도 사진정리를 못 하는 것을 보면 내 삶에 과거를 뒤돌아보는 부지런함은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글은 썼다. 단문으로. 남는 시간에. 수첩에. 조금은 시적으로. 그래서 아직까지도 공상이 많은 것 같다.

툭툭 튀어 올라오는 그 옛날, 그리고 그것과 겹쳐지는 오늘. 그래서 옛날들과 오늘들이 때론 상응하고 때론 대립하면서 잡념이 많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혼자 다니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둘이 다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둘이 여행을 하는 거다. 이것도 둘이 싸우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그래서 셋이 다니라고도 하지 않는가. `2:1'이면 싸움이 그치니 말이다. 그러나 혼자 다니면 오히려 `1:다(多)'의 여행이 시작된다. 누구든 만난다. 길을 물어보다가도 만나고, 밥을 먹다가도 만난다. 오히려 혼자 다니면 상대방이 쉽게 말을 걸어온다.

유럽 어딘가에서 기차간에서 만난 남아프리카의 여선생이었다. 뜨개질을 하면 잘 어울릴 보수적인 복장하고 있던 그녀는 나의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apartheid)에 대한 질문에 `흑인들의 말과 생각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우리 백인이 기준을 세워주는 것'이라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만델라가 누군지도 모를 때였지만, 그 단어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옆에 있던 뉴욕출신 아저씨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뉴욕의 다른 이름이 뭔지 아느냐고 화제를 돌렸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들었다. 뉴욕이 큰 사과 곧 빅애플(big apple)이라는 것을. 왜 그런지는 아직도 모른다. 이런 망상, 재밌지 않은가. `인종차별'과 `빨간 사과'가 함께 떠오르는.

덕분에 공짜로 잠도 자보았고 밥도 얻어먹어 보았다. 강원도에서의 일인데, 15년이 지나 그곳을 찾아 보답을 한 적도 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기억하지만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그를 찾아서 말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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