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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l승인2017.11.15l수정2017.11.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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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부모님을 따라온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에게 숲 안내를 했습니다. 부드러운 표정의 소년은 깊고 진지 해보였지요. 마침 붉게 깊어진 숲은 사색하기 딱 좋았습니다. 나는 되도록 말을 아껴 소년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어요. 가을 숲은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지, 그 귀한 숲의 이야기를 소년이 직접 듣기를 바랐습니다.

산속 습지에 도착했습니다. 웅덩이 물 위에 나뭇잎들이 떨어져 둥둥 떠다닙니다. 잠시 이곳의 소란스럽고 풍요로웠던 지난여름을 추억하는데 마침 진흙 속에 숨었던 잠자리의 어린 수채가 보였습니다. 등에 날개 싹이 돋아난 어린 잠자리였습니다.

“잠자리 어린 수채만 보면 늘 놀라워요. 요 맹랑한 녀석. 감히 물속에서 하늘을 날 꿈을 꾸다니. 그게 가능이나 해요? 그러나 언뜻 무모해 보이는데 그게 헛된 꿈이 아니라는 듯 이렇게 날개 싹을 돋아내는 걸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날개 싹에 대한 이야기에 소년이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그 수채가 나중에 자기가 잠자리가 되는 걸 아나요?”

소년의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장차 자기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닐 잠자리라는 걸 알까요?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가 그렇게 멋진 날개를 단 잠자리가 될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할 것 같애. 그저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 날 잠자리가 되는 게 아닐까?”

소년의 어머니도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질문이고 대답인 것 같은데?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저 수채가 잠자리가 되려고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 날 잠자리가 되는 것처럼 말야.”

입시준비를 앞두고 가족의 고민이 깊어 보입니다. 꿈도 없이 당장 열심히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소년의 회의도 엿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출발선에 선 아이의 시작을 응원하고 싶어서 말길과 눈길에 온 정성을 다해 숲 안내를 했지요. 숲 속 생명들의 부단한 노고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얼마나 엄중한 삶을 살아내는지 말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 소년이 떠오릅니다. 소년의 물음처럼 수채는 자기가 잠자리가 되는 걸 정말 몰랐을까요. 하늘을 날아오를 꿈을 위한 고군분투가 아니라면 어린 수채가 알이었을 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잠자리에게 꿈이 있는 건 아닐 거라고 답한 게 잠자리에게 미안했습니다. `나는 이다음에 커서 저 웅덩이 밖, 시리도록 맑은 파란 하늘 연못에서 헤엄칠 거야.'라는 꿈을 어린 수채라고 못 꿀 이유도 없지요. 어린 잠자리의 꿈이 은유가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르잖아요.

간질간질 등에 날개 싹 돋아날 때에는 어쩌면 키 크느라 소년이 밤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것처럼, 수채들도 밤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단정적으로까지 말할 건 없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찜찜했습니다. 그러니 혹 지금 꿈같은 건 없다고 해도 일단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라는, 꿈같은 건 꾸나 안 꾸나, 있으나 없으나 결국 마찬가지라는 그런 꼰대 충고 같은 것을 해댄 건 아니었을까. 자꾸 곱씹어 생각할수록 소년에게도 미안해졌습니다. 꿈을 꿀 시간조차 없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디 소년의 등에 꼬물꼬물 날개 싹 돋아나기를 응원합니다. 또한 겨울 앞에 선 어린 잠자리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그들의 날개 싹이 무사히 겨울을 나고 봄볕 좋은 어느 날 활짝 펼쳐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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