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지고 나면
국화 지고 나면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11.1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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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가을의 끝을 알리는 것도 국화이다. 넓고 넓은 세상천지에 사시사철 꽃은 피고 지지만, 사람들 눈에 많이 띄는 꽃들만 놓고 보면 국화가 한 해의 마지막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력이 남다른 꽃이기는 하지만, 국화도 때가 되면 지게 마련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화가 지고 나면, 새봄이 올 때까지는 꽃구경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唐)의 시인 원진은 국화가 지고 난 뒤의 허전함을 시로 읊었다.

국화(菊花)

秋叢繞舍似陶家(추총요사사도가) 도연명 집과 같이 가을 국화송이 둘러선 집
遍繞籬邊日漸斜(편요리변일점사) 해는 담장 옆 빼곡한 국화 위에 기우네
不是花中偏愛菊(불시화중편애국) 이 꽃만 편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此花開盡更無花(차화개진갱무화) 이 꽃이 지고 나면 또 무슨 꽃이 있으리


국화는 흔히 은자(隱者)의 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은 세상을 등지고 산 인물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고 간, 특이한 유형의 은자(隱者)이다.

그는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음주(飮酒) 시에서 국화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데, 그래서 국화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다. 시인은 마치 도연명(陶淵明)을 흉내 내기라도 하 듯 집 주변을 빙 둘러 국화를 심어 놓았다.

마침 때는 늦가을인지라, 담장을 두루 에워싸고 국화꽃이 피었는데, 그 너머로 저녁 해가 비스듬히 걸치고 있었다. 실로 그림 같은 정경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도연명(陶淵明)이 그의 시 음주(飮酒) 5에서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꽃 꺾어 멀리 남산을 바라보는데, 저녁 되어 산 기운 더욱 곱구나(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라고 읊은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은 국화만을 편애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꽃이라면 다 좋지만, 유독 국화에 연연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국화꽃이 지고 나면 꽃이 다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인의 변명이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놓고 좋아한다고 못하고 에둘러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가을 내내 들판을 장식한 국화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간다.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국화이기에 이별은 더욱 애틋하지만, 집착할 일은 아니다. 들판 국화는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자리를 떠난다. 그래도 국화가 떠나는 것은 못내 아쉽다. 그래서 사람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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