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한 스푼 그리움 두 스푼
추억 한 스푼 그리움 두 스푼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11.1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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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내린다. 이내 굵어진 빗방울은 풀잎 끝에 맺는다. 풀잎을 훑고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물방울, 풀잎 끝에 맺힌 한 방울은 맑고 영롱한 진주다. 우산 위로 경쾌한 박자가 울려 퍼지고 자박자박 발걸음도 빗소리 장단에 발맞춘다.

먼발치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보일 듯 말듯 희미하게 드러나는 사찰, 해가 제일 먼저 뜨고 진심으로 기도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룬다는 부산의 해동용궁사다. 발아래 바닷물이 보이는 수상법당(水上法堂)으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다. 비록 비가 내리고 있지만 안개와 바다 그리고 절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은 가히 환상적이다.

많은 인파 중, 분명 외국인임에도 등판엶태권도 선수단’이라고 한글로 표기된 검은색 단체복을 입은 여행객이 줄을 잇는다. 이곳을 오려면 백팔계단을 내려와야 하는데 일행 중, 한쪽 발을 깁스하고 목발을 짚고 관람하는 여자선수가 있었다. 난 관람보다도 내내 그 여자선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그 선수의 뒤를 쫓고 있다. 어떻게 이곳까지 내려올 수가 있었을까 비도 내리는데? 외국에서 방문하여 여행일정으로 어쩔 수 없이 관람을 하는 걸까. 일행들에게 민폐는 되지 않을까. 부질없는 의문은 꼬리를 문다.

한참을 따라다니다 편견으로 그릇된 생각을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혼자 오르내리기도 버거운 백팔계단,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진정 환상적인 모습에 절로 감탄을 했다. 다리가 불편하여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오르는데 한걸음 뒤에서 남자선수가 안심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본다. 또 다른 선수는 앞에서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여자선수의 발걸음에 맞춰 뒤도 보지 않고 목발 소리에 장단이라도 맞추는 양 무심한 척 오르고 있었다. 혹여나 여자선수가 자신이 불편한 몸으로 일행을 따라나서 민폐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그저 묵묵히 배려를 하고 있었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다른 선수들은 여행하면서 한걸음 앞, 뒤에서 지켜보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까지 세심하게 읽어주는 동료선수들, 여자선수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얼마나 많이 망설였을까. 그럼에도 함께 동행을 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라는 나의 편견 된 눈높이가 한없이 민망스럽고 낯 뜨거웠다. 아름다운 어울림, 환상적인 관계 바로 지켜봐 주는 동료의 마음 그 마음이 있기에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괜스레 미적거리며 외국인을 따라가면서 오래된 영화 ‘블라인드’에 등장하는 안내견을 회상했다. 경찰대생이 사고 탓에 시각장애가 된 후 사건의 목격자로 오감추적 스릴러가 시작되면서 주인공과 안내견이 등장한다.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안내견은 똑똑하고 충성스럽지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애틋한 보고도 있다. 주인과 교감하고 주인을 위해 평생 보조하면서 손발이 되는 맹인안내견. 주인을 위해 짖지도 않고 아무 때나 먹지도 않고 오로지 주인 곁에서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주인의 안전만을 생각한다. 안내견 삶은 훈련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아닌 오로지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 집중력으로 장애인의 눈이 되어 충성스럽게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충견이다. 안내견이 옆에서 보필하는 것과 몸이 불편한 동료를 지켜보기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운동선수들의 온기가 비 오는 겨울날 따스하게 적신다.

세상은 원칙보다 변칙, 법칙보다 반칙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원칙으로 안내 견은 주인을 보호하고 지켜보기를 하면서 기다려준다.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아름답게 공존하는 환상적인 운동선수들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난 오늘에야 보았다. 진정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란 분을 덧칠하고 치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낯임에도 화사하게 빛나는 공존이라는 것을. 여행은 추억을 먹고 그리움을 남긴다 했다. 추억 한 스푼, 그리움 두 스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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