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을 보는 마음
일식을 보는 마음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1.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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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지난 8월 21일, 99년 만에 미 대륙을 관통하는 개기일식이 있었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개기일식이 역사에 남는 사건이 되었던 것은 아마도 1919년 5월 29일,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아프리카 프린시페 섬에서 관측한 개기일식일 것이다. 에딩턴은 이 개기일식 때 별을 관측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식은 매우 신비하고, 하늘이 인간에게 보이는 어떤 불길한 징조로 인식되어 왔다. 이미 조선 시대에도 일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비롯한 대신들이 하늘의 뜻을 겸허히 받기 위해서 일식 맞이 예식을 치르기도 했던 것이다.

일식은 신의 노여움도 불길한 징조도 아닌 단지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고, 달이 지구 둘레를 돌다 보면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끼어 태양을 가리게 되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일식이다. 그런데 지구와 달의 공전궤도면이 같은 평면이라면 매달 한 번씩 개기일식이 일어나야 하지만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면과 달이 지구를 도는 공전궤도면이 같은 평면이 아니고 6도 정도 약간 어긋나 있기 때문에 일식이 매달 일어나지 않고 드물게 일어난다. 개기일식은 지구와 달의 공전궤도면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구, 태양, 달 상호 간의 거리와 달의 크기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달이 지금보다 조금 더 작거나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지금보다 좀 더 멀었어도 개기일식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개기일식 현상은 기막힌 천문학적 조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일식 현상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듯이 어떤 특정한 순간에만 달이 태양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우주 공간의 어느 곳에선가 개기일식은 `항상'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태양과 달을 잇는 직선상의 우주 어디에는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지구에서 보았을 때 달이 태양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지 달은 언제나 태양을 가리고 있다. 어디 달만 태양을 가리고 있을까? 지구도 태양을 가린다. 밤이란 무엇인가? 지구가 태양을 가린 현상이 아닌가? 서산에 해가 지는 것은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일식이고, 아침에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은 가려졌던 태양이 지구를 벗어나는 일출 현상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일식이란 별것 아니다. 태양과 달이 있고 그 태양과 달이 일직선상에 있는 어느 점에서 보이는 모습에 불과하다. 이런 것을 다 알고 있는 나도 일식을 보려고 색종이를 준비하고 시간에 맞추어서 보고 싶어 한다.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어보고 우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 같은 감정에 젖게도 된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고, 달은 물도 공기도 없는 삭막한 돌덩어리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도 달빛 아래 연인과 함께 걷는 밤은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준다.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밤하늘의 달은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다고 믿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달을 보고 느끼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왜 이렇게 다른가? 문헌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고대 바빌론에서도 일식과 월식의 주기를 정확히 예측했었지만 그들이 일식과 월식이 왜 일어나는지 안다고 해서 그 현상의 신비감조차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왜 그럴까?

논리는 인간의 뇌, 그중에서도 좌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고, 느끼는 감정은 유전자에 새겨진 코드 때문이 아닐까? 태양, 달, 별은 태고적부터 인간과 더불어 존재해 왔고, 그래서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유전자에 각인되지 않았을까? 논리는 인위적인 것이고 감정은 자연적인 것이다. 인간은 논리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논리와 감정, 이 둘의 조화가 깨어지면 인간은 동물이 되거나, 아니면 생각하는 기계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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