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와 나
위고와 나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7.11.09 1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그녀를 만났다. 《꿈속 나의 에스메랄다》라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그녀는 내 공연팀 멤버다. 삶이 분주한 나는 공연팀, 운동팀, 스터디팀, 여행팀, 전원팀 이렇게 팀별로 나누어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만나자마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포장을 풀자 자개로 수 놓인 필통이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필통을 열자 볼펜 세 자루가 보였다. 지워지는 볼펜이라 했다. 그런 볼펜이 있느냐며 신기해하는 내게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할 것 같아 샀다고 했다. 그녀의 고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는 공연장을 향했다. 위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를 민중 작가의 반열에 놀려놓은 《파리의 노트르담》을 무용으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표를 예매했었다.

평소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좋아했던 나는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다.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의 삶을 확대하여 그 속에 싹트는 작은 풀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담는 그의 작품들, 그러면서도 사회와 역사를 담은 그의 작품들은 접할 때마다 매번 다른 빛깔로 다가온다.

공연이 시작되고 관중은 숨을 죽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 뒤틀린 연정에 사로잡힌 노트르담의 부주교 프롤로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펼치는 무용수들의 열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콰지모도의 눈빛이 아직도 머릿속에 가득하다. 몸을 통한 말 없는 말로 표현한 아픔이 내 머릿속으로 옮겨와 내게 많은 말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운이 남아 위고의 다른 작품 《레미제라블》 을 꺼내보았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레미제라블. 굶주림 때문에 빵 한 조각을 훔쳐 전과자가 되었다가 속죄와 자기희생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장발장의 일생. 몇 번을 다시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위고는 그의 작품에서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예수가 되고, 하느님이 되는지'를 그려 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되새김질하며 불쌍한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콰지모도, 에스메랄다, 장발장, 코제트, 팡틴느 그리고 나

과연 불쌍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경제적으로 빈곤하다고 불쌍한 사람일까? 힘이 없다고 불쌍한 사람일까. 아픈 사람일까, 못생긴 사람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불쌍한 사람은 아닐까. 내 마음의 창고를 열고 가만히 들여 다 본다. 캄캄한 창고 안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안쪽 구석에는 둘둘 말린 욕심의 멍석이 서 있고, 군데군데 욕망의 거미줄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창고 바닥에는 깨진 이기심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쓸 만한 것이라고는 한 개도 발견할 수 없는 축축한 창고 안에는 오만의 입자가 폴폴 떠다니고 있다.

문득 그녀가 준 필통을 열고 볼펜을 꺼낸다. 그동안 들여다본 창고의 목록을 써본다. 오만, 욕심, 욕망, 이기심이라는 단어가 나열된다. 지워지는 볼펜 뒷 꽁무니로 단어들을 지운다. 그리고 앞으로 내 창고 안에 채워야 할 목록을 새로 써 본다. 사랑, 자애, 배려, 따듯한 사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나를 돌아본다. 이젠 불쌍하게 살지 말자고, 지워버릴 삶은 쓰지 말자고 가는 계절을 보며 혼자 중얼거려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