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숲
관계의 숲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1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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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정방사를 오르는 길은 완만했지만 오르막이었다. 어느새 계절은 깊어져 가을 산은 짙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짝 마른 단풍잎들은 작은 바람에도 놀랐는지 힘없이 떨어진다. 바닥에는 이미 그렇게 떨어진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 객들의 마음을 바쁘게 하고 있다. 가을 산의 모습을 구경하며 가느라 그랬는지 정상의 산사까지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벌써 지쳐 몇 번을 쉬었다 가다를 반복했을 터인데 걸음이 가뿐하게 느껴졌다. 앞서가는 남편도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다. 요즘 혈관치료를 받고 있다. 조금이라도 오르막길을 걷노라면 금세 다리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져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었다. 치료를 해 주시는 선생님 말씀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이렇게 혈관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겉모습은 힘든 일도 하지 않을 사람 같은데 그동안 무슨 스트레스가 그리도 많았냐고 묻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사람관계가 어디 그리 쉬울까마는 버거울 때가 많았다. 지나보면 사소한 일임에도 혼자 애면글면하기가 일쑤였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온 힘을 다해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억척이로 각인이 되어 쉽지 않은 사람으로 되어 버렸다. 흘러가는 물을 잡아보려 발버둥을 친 격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로 얽히고설키어 살아간다. 어떤 관계는 나 혼자만의 관계일 수도 있고 서로가 주고받는 관계일 수도 있다. 또한 그 관계가 좋을 수도 나쁜 관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성인이 아닌 이상 시시각각 오해와 갈등의 수렁 속에 빠지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그 수렁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닌 나 자신이 만든 적이 많았다. 수렁을 깊게 만드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은 정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와 깊이를 두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는 법이다.

관계라는 것이 너무 많은 것도 버겁겠지만, 관계가 너무 빈약해도 문제가 된다. 우리는 종종 아무도 모르게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반려동물들에게 정을 쏟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소통한다는 말이다. 소통의 부재는 삶을 비참하고 외롭게 만든다. 어떤 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스스로 세상과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지내기도 한다. 또 가상의 세상인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세상과는 소통되지 않아 종종 예기치 못한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자산은 인적 자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적자산은 무조건 관계가 많다고 쌓이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과의 진실 되고 신뢰성이 전제된 관계가 성립될 때 자산으로서의 의미가 있게 된다. 결국은 그 자신의 진정성이 인적 자산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타산을 바탕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기적인 사회, 경쟁의 사회를 만든 우리가 그렇게 만든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내 몸이 이리 아픈 것도 누군가에게 지기 싫고 앞서 가고픈 이기적인 마음에서 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뒤돌아보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나의 인적자산이 그리 부유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정방사 산사에서 내려다보이는 가을 숲이 더 없이 풍성하게 보인다. 아직 나뭇잎이 물들지 못한 나무도, 벌써 잎이 나무에서 말라버린 나무도 하나의 풍경이 되어 그렇게 같이 물들고 있다. 분명 사람도 숲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우렁더우렁 그렇게 서로의 모습을 물들이며 살아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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