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그대
고마워요 그대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7.1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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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쌀쌀하다. 며칠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흐른다. 주춤거리던 단풍이 빠른 걸음으로 산과 들을 물들인다.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던 길, 나무의자에 앉아 모처럼 햇볕을 쬔다. 무릎이 따끈하다. 노랗게 익은 모과에서 미지근한 향이 풀려나온다. 벚나무 물든 잎이 팔랑팔랑 떨어지다 거미줄에 걸린다. 끝이 살짝 말린 붉은 잎사귀가 푸른 하늘에서 팔랑개비처럼 돌아간다. 푸름 속 붉음이 뜨겁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 계절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감사하다.

그런데 갑자기 한가로움 사이로 사이렌 소리가 끼어든다. 붉은 소방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여 일어서는 사이 하늘에 걸려 있던 붉은 잎도 간 곳이 없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이 삽상하다. 낙엽 쌓인 길을 혼자 걸으며 가을날 우수에 젖어보는 낭만을 즐긴다. 붉은 신호등에 걸려 네거리 귀퉁이에 잠시 점처럼 서 있는데 느닷없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찬바람이 얼굴을 휘감고 지나간다.

느티나무 잎들이 흩날렸다. 잠깐 사이 소방차는 골목으로 자취를 감추고 아무 일 없는 듯 거리는 일상처럼 흐른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별일 아니길 마음으로 기도한다.

단풍에 물들 틈도 없이 쌀쌀해지는 날씨와 함께 소방관의 하루도 긴장되고 분주한 듯하다. 화재 현장뿐 아니라 위급한 환자 이송부터 자동차 사고 구조, 가축포획, 벌집 제거까지 그들의 손길은 국민의 삶 깊숙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느라 위험한 상황에도 기꺼이 임무를 수행한다.

언젠가 화재 진압현장 구석에서 컵라면을 먹는 소방관의 사진을 보고 울컥 눈물이 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화재를 진압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십 대 앳된 청년의 모습도. 그리고 아빠이며 남편이었던 수많은 순직 소방관들도.

소방차는 노후하고 지급되는 방화복이나 화재진압 장비들은 부실하다 보니 사고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확률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소방관을 위한 전문 병원도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혹시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지만 근무환경이나 대우는 매우 열악한 편이다.

그들이라고 왜 두려움이 없겠는가. 고된 업무와 외상후스트레스, 우울증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의 고충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최근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협의중이라는 소식이 있어 반갑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있고 국가직으로 전환할 경우에 따라오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현안 문제들도 있어 결정이 쉽지는 않을 거 같다. 하지만 협의가 잘 이루어져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니 아파트 전체에 벨이 울린다. 심장이 또 벌렁거린다. 화재 경보 시설 점검이다. 종일 사이렌 소리에 하루가 어지럽다. 오는 9일이 소방의 날이라고 경비아저씨가 웃는다. 길게 짧게 연속으로 울리는 벨 소리를 들으며 소방관들을 생각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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