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時享)
시향(時享)
  • 임도순<수필가>
  • 승인 2017.11.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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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도순

제사는 돌아가신 선조의 혼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정성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제사가 처음 시작된 것은 선사시대부터라고 믿는다. 자연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일들에 대해 이를 다스리는 신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 혼령에게 음식을 올리고 복을 빈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정성으로 지내는 제사가 효라고 생각하고 4대 봉사를 하였다. 4대조까지의 제사는 돌아가신 날이 시작되는 시간에 모시는 기제사와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로 구분한다. 그 윗대는 시향이라는 제도가 있어 산소에 찾아가 예를 갖춘다.

시향은 10월에 있다. 5대조 이상의 조상 산소에서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자손들이 선대 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마음속에 간직하는 계기가 된다. 오래전부터 집안마다 날짜를 정하고 모두가 함께하는 날이 되도록 하였다.

집안의 유명 인물을 알려주며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였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대대로 이어가는 씨족임을 다지며 서로의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도 된다.

늦은 가을이면 학창시절 보았던 시향이 생각난다. 나의 고향집에서 중·고등학교까지는 십 여 리로 매일 걸어다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수업이 늦게 끝나지만 토요일이면 오전에 마쳐 일찍 집으로 간다. 집에 가는 중에 운이 좋으면 시향을 마치고 음식을 먹는 자리를 만났고 어르신들이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조금씩 나눠주었다. 음식을 얻어먹으며 아주 만족했던 그때의 모습이 추억 속에서 꺼내진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때에만 맛을 보는 음식인 전과 과자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70년대에는 시향 음식을 준비하는 분이 따로 있었다. 종중에서 운영하는 밭이나 논을 가꾸는 분이 생산되는 농작물을 소유하는 대신 제물을 준비하였다. 음식 준비도 어렵지만 운반 작업은 더욱 어려웠다. 산소가 대부분 높은 산이나 길이 닫지 않는 곳에 위치하여 지게로 운반하였다. 평지 길도 운반 수단이 지게밖에 없었지만 산을 오르는데 다른 수단보다 훨씬 수월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요즈음은 제사상의 차림이 현대인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바뀌고 있다. 대추, 밤, 배, 감을 놓는 순서는 지키지만 사과는 기본이고 바나나. 수박, 귤, 메론 등 다양한 과일과 채소들이 차려진다. 과자, 떡, 전, 나물류도 다양하지만 기호에 따라 준비한다. 우리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이 오래도록 유지되면 좋겠지만 실속을 차리는 상차림으로 빠르게 변한다.

조상을 모시는 풍습과 실리가 둘 다 중요하다. 대가족 사회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면서 시향의 의미가 흐려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통적으로 이어오며 조상을 모시는 긍정적인 면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실리(實利)가 잘 결합되어 맥(脈)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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