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11.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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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자유한국당이 마침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에서 내쫓는 데 성공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바른정당의 이른바 통합파 의원 몇몇을 복귀시키는 데 필요한 구실 마련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무너진 보수 재건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이같은 장담과 낙관에 공감하는 국민은 많지않은 것 같다. 돌아올 의원들은 새로운 보수의 지평을 열겠다며 호기롭게 당을 박차고 나갔던 인물들이다. 남은 의원들을 보수 궤멸을 초래하고도 일말의 책임도 지지않는 후안무치로 몰아붙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했고,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처절한 변신과 모험보다는 구호와 호소에 그친 안일한 전략의 필연적 결과였다. 한때 하늘을 찔렀던 포부와 의지는 `각자도생'의 셈법 앞에서 신속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가장 편안한 후퇴의 방식은 그나마 제1야당의 구색을 갖춘 옛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당권을 잡았지만 당내 기반이 취약한 홍준표 대표와의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썩은 집단으로 매도하며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려면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들이 요구한 명분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누워있는 옛 주군에게 사약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절차는 대표와 중진 간 지저분한 폭로전까지 거치고 나서야 완성됐다.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출당 이유로 `해당 행위'를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일개 당원이 아니었다. 당의 상징을 넘어 당의 운영 전반을 좌지우지 했던 실질적 오너였다. `배신자'라는 그의 말 한마디로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날 정도였다. 청와대가 `진박공천'을 밀어붙였다가 참패한 지난 총선은 한국당의 좌초를 재촉한 결정타로 꼽힌다. 당시 대통령의 시도착오적 독선에 동조하거나 방관했던 인물들이 아직 한국당의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해당행위를 부추기고 방조한 해당행위에 대해서는 한줌의 반성도 사과도 없이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축출과 바른정당과의 부분적 통합을 보수 재정립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삼으려면 우선 회초리를 든 보수 유권자들에게 진정한 사죄부터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당의 행태를 보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을 최종 정리한 지난 3일 최고위원회에서 나온 발언만 해도 그렇다. 한 최고위원은 “보수 우파가 덫에 걸려 궤멸 직전에 이르렀다”고 했다. 보수가 침몰한 것은 누군가 놓은 덫에 재수없게 걸렸기 때문이라는 말에 다름아니다. 일반의 현실인식과도 한참 동떨어진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깊은 자성은 뼈를 깍는 쇄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혁신과 개혁에서 여당에 밀리면 야당은 설 땅이 없다. 최근의 적폐청산 논란만 해도 그렇다. 터지는 건마다 정치보복으로 몰아가다 보니 적폐 청산을 부정하는 정당으로 치부될 정도다. 사안에 따라서는 여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 개혁정당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있는 강원랜드 채용비리의 경우 청와대는 전수조사와 재수사를 천명하며 적극 개입하고 있으나 한국당은 입장이 없다. 몇몇 의원이 청탁 혐의를 받는 난감한 상황을 이해못 할 바는 아니지만 방어적 자세로만 일관하다가는 기회가 왔을 때도 동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얼마 전 대통령의 국회 연설 때 펼침막을 앞세운 구닥다리 방식의 시위가 어떻게 무력화 됐는지 돌아 볼 일이다.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젊은 피의 수혈도 절박한 숙제다. 너나없이 보수의 재건을 외치고 있지만 보수의 미래를 펼쳐나갈 뉴 페이스는 보이지 않는다. 20~ 30대 젊은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는 현실 타개책으로도 젊은 인재 영입은 유용하다. 유권자 노령화와 나이를 먹으면서 정치성향이 보수로 전환하는 낡은 패턴에 안주하다가는 만년 야당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보수 유권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자문하는 일이다. 홍준표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내가 집권하면 종편방송 몇 곳과 여론조사기관들을 손 보겠다”고 했다. 역풍만 맞은 시대착오적 발언이었다. 친박청산을 놓고 최근 당내에서 오고간 막말들은 지지자들에게 수치심을 줬다. 보수 유권자들은 더 이상 거친 선동적 언어에 현혹되지 않는다. 언어는 정제하고 행동에는 품격을 입혀야 한다. 유권자가 자신들보다 냉철한 이성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지지율은 반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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