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것들의 붕괴
대단한 것들의 붕괴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7.11.0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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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

알려드립니다, 방송사 사정으로 음악 방송을 들려 드립니다.

출퇴근길에 잠깐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몇 주 동안이나 음악으로 대체되어 나온다. 이번 추석은 10월 4일이었는데, 라디오의 진행자는 9월 27일이라고 소개하였다. 2년 전 특집 생방송을 다시 내보낸 것이었다. 당연히 날짜와 시간, 특히 교통상황 등 방송에서 언급되는 것이 현재 사실과 달랐다. 그동안 방송이라면 어느 정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는 이런 현실에서 황당하고 이질적이고 뭔가 한 대 맞으며, 깨어나는 듯하다. 전에는 생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이나 출연자들은 방송의 기한을 맞추느라 초긴장을 하면 살았을 것이었다. 어쨌든 올해는, 그 관계자들이 유례없이 긴 연휴를 긴장하지 않고 지냈을 것 같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변호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아이와 함께 봤었고, 이번에는 집에서 함께 보았다. 다시 보게 되니 그 당시와는 다른 장면에서 새삼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주인공인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이 있었던 현장을 찾다가 고문을 담당했던 조동영 경감에게 들켜서 일방적으로 맞는 장면이었다. `국가'를 지극히 위하는(?) 경감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경건하게 가슴에 손을 대고 잠시 적을 패는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애국가가 멈추자 다시 싸움을 계속했다. 아이가 묻는다. 왜 저렇게 하는 거냐고. 그냥 예전에는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하니까, 왜 그렇게 정했느냐고 계속 묻는데, 논리적인 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생각하고 따랐다.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애국심이 없는 건 아닌지 자책한 적도 있다. 어렸을 때 매일 아침에 국기 게양식, 오후에 강하식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도 어디선가 애국가가 울리면, 태극기가 있음 직한 방향으로 바로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멈추어 있었다. 지금은 어디선가 애국가가 울리더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올리지 않는다. 이젠 부끄러운 역사의 추억이 되었다. 영화 속의 그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 싶은 사회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아주 중요한 장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삶은 끊임없이 안개 낀 숲을 지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살아가게 되었고 그 시대와 그 사회의 규범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게 된다. 안개 낀 숲을 지나면서도 방향을 제대로 찾고, 숲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체로 지나고 나서야 지나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옆으로 난 작은 갈래 길이 있었음을 알아채게 된다.

지금 11월의 숲엔 단풍이 가득하다. 여름날 하나같이 초록으로 빛나더니, 가을에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자기만의 색을 가졌다. 단풍은 초록이 부서지고 나서야 나타나는 본래 자기만의 색이다. 사람도 이렇게 인생의 가을이 되면 자기만의 빛으로 물들게 되는가. 스스로 부서지고 나서야 아름다워지는가?

기이하여라, 안갯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헤르만 헤세의 `안갯속에서' 중)

대단한 것들을 부수니 작지만 귀한 것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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