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금에 허리가 휠 지경
부조금에 허리가 휠 지경
  • 박명식 기자
  • 승인 2017.11.02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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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박명식 부장(음성주재)

요즘 예식장은 물론이고 장례식장에 개업집, 이삿집, 칠순잔치까지 축하금과 부조금을 감당하려니 허리가 휠 지경이란 말을 공공연히 들을 수가 있다.

받은 것이 있으면 보답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받은 것도 없는데 날라 온 청첩장과 부고(訃告)소식을 냉정하게 외면할 수 없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요즘의 현실이다.

당사자를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그 사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려면 5만 원 짜리 봉투 한 장 만드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부조(扶助)란 도울`扶'와 도울`助'가 합쳐진 좋은 뜻의 말이다.

그러나 요즘의 부조는 사람의 등골을 빼먹는 단어로 인식될 만큼 부담으로 작용하는 말이 됐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관혼상제(冠婚喪祭) 문화가 발달돼 있고 그 이면에`부조'라는 풍속이 있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든 시대의 부조는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품앗이로 일손을 돕거나 쌀과 곡식 등을 보내 서로 돕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먹고 살만해 지면서 축하나 애도를 표하는 방식이 돈 봉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부조가 순수한 마음의 차원을 넘어 돈에 집착하는 문화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과거 우리의 인심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찾아주는 것만도 고마워 거지에게까지 푸짐한 상을 차려 내놓았다.

요즘은 잔칫날 봉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식권이 지급되지 않아 따듯한 국수 한 그릇도 얻어 먹지 못한다.

오히려 축하나 조의를 위해 온 손님이 건넨 봉투안의 액수로 관계의 정도를 저울질하는 지경이 됐다.

돈을 목적으로 자신은 여기저기 청첩장을 남발해 돈을 챙기고 남의 집안 일에는 청첩이 와도 가지 않는 괘씸한 일도 다분하다.

이로 인해 큰 일 한번 치르면 친구 간, 이웃 간, 하물며 친족 간도 그 즉시 관계가 냉각되거나 끊기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사람의 정을 돈으로 주고 받다보니 생겨나는 폐단이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결혼식, 장례식에서 돈을 내는 풍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결혼의 경우 돈이 아닌 편지와 축하카드, 생활용품 등 소박한 혼수용품을 예비부부에게 선물하는 풍속이 일반화돼 있다.

부조문화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수립하고 상부상조하는 사회를 만드는 윤활제와도 같은 것이기에 결코 나쁜 풍속이 아니다.

돈이라는 물질이 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다정다감했던 우리 미풍양속의 본질이 왜곡되고, 돈보다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주고 받는 사람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사회가 사라진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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