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보내고
그대를 보내고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7.11.02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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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그 남자를 묻고 왔다. 장정들이 관에서 그를 꺼내 파 놓은 땅 위에 눕혔다.

관도 없이 그는 땅과 한 몸이 되고 싶었나 보다. 노란 수의 안에 담긴 채 누에고치처럼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의 몸 위에 흙을 한 삽 떠 넣었다. 동공을 가로막는 뿌연 물을 손등으로 꾹꾹 눌렀다. 삽을 놓고 태연한 척 돌아섰다. 방수처리를 미처 하지 못한 지붕처럼 눈에서 자꾸 물이 떨어졌다.

문우들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소리는 몸 안으로 구겨 넣었는데, 공막 위에 잎 떨군 말채나무처럼 서 있는 핏발로 울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잡지사 신인 문학상 시상식에서였다. 그가 심사위원이었고 내 시를 알아봐 주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를 시인의 길로 입문하게 해준 사람이다. 어쩌면 문학에서 나침반처럼 나의 길을 인도해 준 아버지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그런 그가 한 달 전 전화를 걸어왔다. “시집 나왔다. 책을 주고 싶어서…….”

난 당시 여름을 할퀴고 간 큰 수해를 입고 그 복구로 정신이 없었다.

“네 선생님! 수남 언니와 정오 시인과 다 같이 찾아뵐게요”라고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주일 후 그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일반실로 옮겼다는 전화를 받고 서울로 차를 몰았다. 송파에 있는 병원이었다.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잘랐다며 붕대를 감고 있었다. 심장도 안 좋다고 했다. 연변 남자인 듯한 사람이 그를 간병하고 그 옆에는 자그마한 사모님이 수척한 모습으로 그를 지키고 있었다. 힘겨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의 손을 쥐었다. 그가 손에 힘을 주었다. 거미줄에 달려 대롱거리는 한 잎 물방울 같은 손이 느껴졌다. 얼른 쾌차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덩이를 가슴에 매단 채 병실문을 나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의 부음이 들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를 땅에 묻고 오면서 그의 집 마당 가에 서 있는 탱자를 세 알 따서 차에 넣었다. 마치 그의 유골이라도 되는 양.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그의 기억을 더듬고 싶었다. 차를 몰아 돌아오는 길,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그가 온화한 눈길을 부슬부슬 뿌려주는 것 같았다.

참 허망하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겠다. 난 어느 날 갑자기 놀이공원에서 손을 놓친 아이가 되었다. 핸드폰을 열어 그 남자와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시상식 날 첫 만남의 사진, 석양이 아름답다는 그의 집 석가헌에서 가르침을 받던 사진, 스승의 날 함께 식당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그의 영결식 사진.

좋은 곳에 가길 기도한다. 시를 사랑하여 시라는 외길인생을 간 남자. 시에 도가 통한 남자. 자연이 자꾸 말을 걸어와서 시를 안 쓸 수가 없다고 하던 남자. 자연을 섬기며 시를 쓰라던 남자. 화자 우월주의를 버리라던 남자. 율려의 힘을 믿던 남자. 가기 마지막까지도 끝맺지 못한 시를 걱정했다는 남자. 이젠 볼 수 없는 남자. 그러나 시집으로 내 책장에 늘 함께 있을 나의 영원한 남자.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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