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변화
한국어의 변화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11.0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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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한국어라고 써놓고도 민망하다. 우리말이면 됐지 무슨 한국어라는 딱딱한 말을 쓰는지, 조금은 현학적이면서도 관방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정말 `한국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객관화시켜서 말하고자 한다.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한국어의 현상이다. 그것도 한국어 발음의 문제다.

예전부터 우리말이 글로 쓴 것처럼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자주 지적되어왔다. 우리말은 독일어처럼 발음기호가 없는데도, `글'과 `소리'가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음의 법칙적인 변화를 국어 시간에 열심히 익히기 때문에 문자처럼 읽히지 않는다고 해서 지장은 없었다.

이를테면 구개음화(口蓋音化)와 같은 어려운 한자로 설명하는 발음의 일정한 변화다. 그것은 ㄷ, ㅌ이 모음 ㅣ 또는 반모음 ㅣ와 만나서 ㅈ, ㅊ으로 발음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밥솥에, 밥솥은'은 그냥 연음현상이므로 /밥쏘테, 밥쏘튼/으로 읽으면 된다. 그런데 구개음화는 `밥솥이'처럼 `밥소티'로 발음되지 않고 /밥쏘치/로 읽힌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는 절로 다 되는 발음의 법칙을 학술적으로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말로는 `입천장소리되기', 북한에서는 `앞천장소리되기'등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그 발음은 상당히 혼동된다. 이를테면 `밭은', `밭에'를 /바튼, 바테/로 그대로 이어 붙여 읽어야 하는데 /바츤, 바체/로 읽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ㅣ모음만 되는 것이니 `밭이'만 /바치/로 읽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내 /바테/ 돌이 많고 네 /바튼/ 뱀이 많으니 어느 /바치/ 좋을까?'가 옳은 발음인데, `내 /바체/ 돌이 많고 네 /바츤/ 뱀이 많으니 어느 /바치/ 좋을까?'라고 읽는다. 재밌게도 구개음화라는 것은 발음을 그런대로 편하게 하는 것이라서 /바치/를 /바티/로 읽지는 않는다.

말이 나온 김에, 구어에서 `네'를 `니'로 말하는 것도 이제 일반적이다. 이제는 `네가'가 아니라 `니가'가 정형화되고 있다. `내'와 `네'가 잘 구별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이는데, 국어사전은 `너의 방언(그것도 경상도)'으로만 취급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리고 소리내기 쉬운 소리로 바뀌는 대표적인 복모음이 `ㅚ'다. `ㅚ'는 /eo/ 또는 /?/(우물라우트 O) 정도로 읽혀야 하는데도, 오늘날 대부분 사람이 /ㅞ/로 읽는다. `나는 /웨둥/으로 태어나서 /웨람/되게도 막내 /웨삼촌(춘)/과 /웨국/ 여행을 다닌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내가 발견한 특이한 현상이 있다. 그것은 젊은이를 중심으로 자음접변(子音接變)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음동화(同化)라고 불리는 이 발음규칙은 받침의 자음이 초성의 자음과 만나 그 소리가 바뀌는 것으로, ㄱ, ㅋ은 ㄴ, ㅁ 위에서 ㅇ으로, ㄷ, ㅌ, ㅅ, ㅊ, ㅈ은 ㄴ, ㅁ 위에서 ㅁ으로, ㄴ은 ㄹ위에서 ㄹ로 바뀐다. 그러니까 `독립'은 /동닙/으로, `떡메'는 `떵메'로 읽힌다. 위에서 나온 /망내/도 그렇다. 이런 규칙이 있음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앞이 ㄴ이고 뒤가 ㄹ이 올 때, 앞의 발음을 과감하게 /ㄹ/로 바꾸는 데 주저한다. 그러니까 `신라'를 /실라/로 읽지 않고 매우 어색한 /신라/ 또는 /신ㄹ나/로 읽는다. 영어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이제는 매 학기마다 발음교정도 해줘야 할 정도다.

철학에서 자주 나오는 `윤리학'은 이제 /율리학/이 아니라 /윤니학/ 또는 /윤ㄴ리학/ 또는 /윤ㄹ니학/으로 들린다. `인류'도 /인뉴/거나 /인ㄹ뉴/다.

참으로 /경웨/롭다. 이제 /질리/(眞理)가 /진니/(塵泥)가 된다니 말이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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