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차이, 세상의 온도
-고 김주혁을 애도함
사람의 차이, 세상의 온도
-고 김주혁을 애도함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31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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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풍자와 은유가 없는 표현은 얼마나 삭막한가. 급작스러운 젊은 배우 김주혁의 사망 소식에 엉뚱하게도 나는 사람의 차이와 세상의 온도를 생각한다.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은 천상배우 김주혁이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봤을 <1박 2일>에서 김주혁은 구석을 의미하는 사투리 `구탱이'라는 이름으로 해맑았다.

마침 “나만 아니면 돼”를 수없이 외치며 수단 방법을 가릴 것 없이 (게임에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승자독식에 식상해 있던 터라 어딘지 허술하고 순박한 `구탱이 형'의 등장은 신선했다.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무슨 그리 심각한 생각을 하느냐는 지청구를 듣기도 했으나, 요즘 드러나는 온갖 블랙리스트와 방송·문화·예술의 장악 기도를 보면 당시의 이런 내 분노가 기우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듯 해 오히려 씁쓸하다. 마침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이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나영석 PD에 대해서도 KBS노조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좌파세력으로 분류해 압박하려 했다는 `시대와 정권'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무조건적 생존 욕망과 극단적 이기주의는 <1박 2일>을 통해 은근슬쩍 편법과 탈법, 그리고 불법을 부추기는 사회적 결과를 타당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적폐가 작용한다.

구석 자리인 `구탱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데다 잘 생긴 외모의 정통배우가 수난을 당하는 김주혁의 등장은 어쩌면 더 가학적이거나,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회귀하려는 세상의 온도일 수도 있겠다.

일찍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매체의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이 인간의 정신 속에 동일성 원리를 실현시키는 수단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 문화산업이 지금에 이르러 국가와 개인, 그리고 집단의 미래 권력 또는 중요한 먹거리로 대접받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음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주혁이 죽었다. 그 사망원인이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마흔여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아르곤>에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그 세상에서 오로지 팩트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치열한 언론인의 모습을 열연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의 세상살이 방법을 구석(구탱이)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늘 당하면서도 대중에게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의 차이'를 통해 `세상의 온도'의 변화가능성을 대중에게 선물한 김주혁.

`진실과 팩트'를 근간으로 세상의 모든 가짜들과, 그 가짜로부터 비롯되는 권력과 지배 욕망의 탈을 벗겨내려 안간힘을 썼던 <아르곤>의 김주혁은 이제 유작으로 남아있게 됐다.

어쩌면 연일 드러나는 각종 블랙리스트와 사람을 편 가르며 길들이고자 했던 정권의 허황된 숨은 독재 의도를 말끔하게 청산할 수 있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대중을 세뇌하거나, 오로지 일방의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려는 시도를 알아차리게 됐다는 점만으로도 사람의 차이는 크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결연한 대중의 의지는 커지게 된다.

온 가족이 TV 앞에 올망졸망 모여 함께 낄낄거리던 시대는 분명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리운 공동체. 사람의 차이가 세상의 온도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힘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삼가 천상배우 김주혁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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