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가리는 추억으로
볏가리는 추억으로
  • 임도순<수필가>
  • 승인 2017.10.3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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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도순

가을의 소리가 요란하다. 벼를 수확하는 기계가 황금 들녘에서 종횡무진 활동을 하며 내는 소리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콤바인의 둔탁한 기계 소리가 농촌의 벗이 된 지 오래다. 여러 단계를 거쳐 곳간에 저장하던 일이 한 번에 이루어지며 울려 퍼지는 기계 소리가 친근하다.

벼 수확 시기는 일손이 가장 많이 가장 필요한 때로 농번기라고 한다.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급격히 줄고 노령화되었다. 일손의 부족한 부분을 콤바인이 대체해 주면서 인구의 변화로 나타나는 빈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낫으로 벼를 베던 시절을 돌아본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논농사는 대부분 노동으로 이루어졌다. 수확에는 여러 단계가 있어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쉼이 없는 노동은 몸을 극도로 피로하게 했었다. 벼를 베면서 묶고 그 자리에 세우거나 물기가 없는 논둑으로 옮겨 말리는 일이지만 쉽지 않다. 잘 말린 볏단은 농가에 있는 마당에 등짐으로 옮기었다. 농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농민은 경운기나 마차를 이용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탈곡은 마당에서 하였다. 볏단이 높게 쌓여 볏가리가 되면 탈곡 날짜를 정한다. 탈곡기는 발로 밟아 둥근 통이 돌아가게 되고 돌아가는 원심력으로 벼알을 볏짚에서 분리한다. 수확 작업은 분업이다. 둘이나 셋이 발판을 밟아 빠르게 탈곡기를 돌리어 탈곡하고, 기계 양옆에 두 분은 작업이 원만히 진행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탈곡기 앞에 벼알이 모이는 곳에 이물질을 제거하는 분이 있었고, 뒤에서는 볏짚을 묶어서 일정한 장소에 쌓아 놓았다. 해마다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이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새벽에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이루어지는 고된 작업이지만 수확의 기쁨이 있어 표정은 밝았다.

아낙네들은 먹거리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강한 육체적 노동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일을 도맡았다. 나무를 땔감으로 하여 무쇠 솥에 많은 양의 밥을 짓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평소에 먹어보지 않았던 반찬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정성을 다한 상차림으로 대접하였다. 일꾼과 이웃주민은 물론 오가는 분도 함께하며 훈훈한 인정이 나누어졌다. 하루 세끼 외에도 새참시간이 있어 잠시도 쉴 틈 없이 제공하지만 이웃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

요즈음은 벼 수확이 기계로 이루어진다. 콤바인이 보급되면서 전에는 수십 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두·세 명이 작업한다. 적은 인원으로 기계를 이용한 작업이 되면서 먹거리 해결도 달라졌다. 전문 음식점에 작업 인원수에 맞게 음식을 배달시켜 해결한다. 작업 인원이 적다 보니 음식에 여유가 없어 들녘에서 만나는 이웃이 있어도 함께하지 못한다. 먹거리 문화가 바뀌고 수확 작업도 많이 변하여 농촌에서 풍기는 정겨운 맛은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인력으로 탈곡하며 어우러지던 농촌 풍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마당에 아주 높게 보였던 볏가리의 모습이 추억 속에 한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고기 한 점 없는 시원한 무국과 정성으로 준비한 반찬에 흰 쌀밥이지만 그 시절에 나누던 정이 생각난다. 벼 수확 철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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