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비평문화가 없다
충북, 비평문화가 없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7.10.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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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 3팀장(부국장)

대한민국 가을은 온통 축제의 장이다. 지난 9월과 10월 두 달간 전국은 국제행사와 지역축제로 떠들썩했다. 한해에 1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축제가 진행되는 것만 보더라도 과열된 축제는 우려의 수준을 넘고 있다.

이마저 많은 축제가 내용과 기간이 겹치면서 지나친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자치단체와 단체장의 홍보와 맞물리면서 행사가 줄어들긴 어려울 전망이다.

충북의 가을 역시 축제로 바쁘게 돌아갔다. 오송화장품뷰티산업엑스포, 제천국제한방바이오산업엑스포, 청주공예비엔날레, 중국인 유학생 페스티벌, 청원생명축제, 증평인삼골축제, 음성인삼축제, 영동 와인축제, 단양 온달문화축제, 보은대추축제, 충북예술제 등 셀 수 없이 많은 축제가 이 기간에 집중됐다. 예산을 어림잡아 따져도 200억 원대를 웃도는 수치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역축제도 활짝 꽃핀 셈이다.

이처럼 많은 지자체가 잔치에 공을 들이는 것은 관광과 산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다. 또한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로 부각시키려는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를 돈으로 환산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 지자체가 축제나 문화예술 행사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가 돈으로 계산되지 않게 하려면 성장하는 문화예술을 보여줄 책임도 커져야 한다. 이는 문화예술인이나 기획자나 예산집행자나 마찬가지다. 예산은 늘어나는데 문화예술의 수준은 제자리라면 굳이 아까운 세금으로 축제나 문화예술계를 지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권에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문화예술의 질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단체의 위상이나 행사의 존립도 흔들릴 게 뻔하다.

문제는 전국의 축제가 1000개가 넘어도 성공한 축제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점이다. 이름과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사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음이다. 이처럼 반복되고 있는 실패에는 올바른 비평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비평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비평이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지만 그중 가장 유연하다는 문화예술계마저도 비평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권력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비평문화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비평이 사라지면서 평가의 잣대도 고무줄이 되어버렸다.

미술은 화가의 열정과 진정성보다는 갤러리에서 평가를 조절하고, 문학은 온갖 이름도 모호한 상들이 쏟아지면서 올바른 작품 평가를 흐려 놓고, 음악은 계파와 엔터테인먼트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지역은 더 심각하다. 비평문화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계에 얽혀 올바른 비평이나 비판이 되레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괜스레 미움받느니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회피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건전한 비평문화가 주눅이 들다 보니 조금만 돌아봐도 자화자찬에 칭찬 일색이다. 훌륭한 문화예술의 지역 토대가 자리 잡기 어려운 까닭이다.

비평이란 사물의 아름답고 추하고, 선하고 악하고, 길고 짧고, 높고 낮음을 들추어내어 그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다. 객관적 평가와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만큼 전문영역인 셈이다. 비평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비판의 본질인 만큼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사회적 책무다.

축제의 끝은 엄정한 평가와 비평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무한 긍정은 무한 부정보다 못하다. 사회적 유용성이나 합리성은 긍정과 부정의 연속성에서 파생되는 것임을 통찰하고 고찰할 때 충북의 문화예술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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