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은 코끼리
하이힐 신은 코끼리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10.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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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코끼리가 산에 오른다. 그 많던 짐을 내려놓고 비탈을 넘는다. 산을 넘는 등이 허전하다. 초원을 누비던 코끼리의 등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새끼 코끼리들도 석양을 등진 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 설치 미술가가 계족산 입구 양지바른 숲에 철판을 도려 모양 만들고 색칠하고 마음 입혀 생태조각 작품을 세워놓았다. 오늘을 사는 코끼리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가는 `빨간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작품을 통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현대인들의 삶을 조망한다. 오십을 넘어 중년에 든 남자의 휘청거리는 몸짓을 풀어낸다.

초원을 누비는 코끼리의 등엔 언제나 무거운 짐이 실려 있다. 자기 몸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넌다. 그러한 코끼리가 잠시 자신의 임무이며 의무인 짐에서 해방되어 편안하게 산에 오른다. 그것도 빨간 하이힐을 신고서 말이다. 코끼리의 육중함과 가벼운 힐이 대비되어 웃음이 나온다. 작가는 산을 찾은 내게 헛웃음이라 할지라도 웃고 사느냐고 물어온다.

만족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인가? 육중한 몸의 코끼리가 하이힐을 신은 채 산에 오르듯 숨쉬기조차 버거운 몸으로 삶의 경계를 맴돌고 있다. 산과 바다를 찾아도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보따리를 밀쳐내지 못한다.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한다. 마음 붙들기 쉽지 않다.

산등성이를 휘돌던 바람에서 체리 맛이 난다. 공기마저 달다. 길에 생명이 돌고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어 같이 숨 쉰다. 숲과 한 몸이 되어 걷는다. 길과 사람이 만나고 자연과 사람이 한 몸이 된다. 땅과 하늘, 나무와 숲, 내 곁을 스쳐 가는 목이 긴 이의 얼굴마저 낯설지 않다.

작가는 생명이 돌지 않는 죽은 나뭇가지를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운다. 죽은 나무 몸통에 졸가리를 소복하게 쌓아 놓고 철사를 연결해 피를 돌게 한다. 돌멩이나 뜨개 실 줄이나 자연의 어떤 객체건 나무와 연결해 숨을 불어넣는다. 세포의 증식과 분열을 통해 뼈와 살을 생성하듯 나무줄기는 길이 되어 하늘과 땅과 만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종이로 만든 꽃에 생기가 돌고 물고기를 걸어 놓은 나무에서 바닷냄새가 난다.

인간이 남기는 발자국은 무수히 많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길이도 다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멀어지지 않고 각자 남긴 발자국에 동화한다. 서로 몸을 기댄다. 그 발자국 따라 걸으며 무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어느 색깔로 물들어 가고 있을까? 계족산 등산로 입구에 설치한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작품은 내게 수많은 생각과 언어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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